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레밍의 지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레밍의 지혜?

입력
2006.02.27 01:03
0 0

북구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들과 숲에 서식하는 레밍(lemming)이라는 쥐과 동물이 있다. 시궁쥐나 들쥐 등 다른 쥐과 동물과 마찬가지로 번식력이 놀랍다. 개체수가 크게 늘어 먹이 환경이 압박을 받으면, 보다 나은 서식지를 찾아 대이동을 한다. 우두머리를 따라 줄지어 달려가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목격담 가운데는 해안절벽에서 떼로 바다에 뛰어든다는 것도 있었고, 그것이 ‘이타적 집단자살’이라는 오해를 낳았다. 무리의 존속, 즉 종의 보존을 위해 늙은 레밍들이 주기적 ‘집단자살’을 결행해 개체수를 조절한다는 것이다.

■이런 오해는 1996년 캐나다의 데니스 치티 박사에 의해 깨졌다. 그는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나선 대이동 과정에서 해안절벽에 이르러 머뭇거리다가 극히 일부가 떠밀리거나 미끄러져 바다에 빠질 뿐이며, ‘불운’을 면한 대부분의 레밍은 새로운 서식지에 성공적으로 정착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레밍의 ‘집단자살’이라는 그릇된 상식의 붕괴는 한때 동물사회학이나 진화생태학 분야에 퍼졌던 ‘무리도태’의 관념도 깨뜨렸다. 자연도태는 집단 차원에서 일어난다거나 동물은 종의 보존을 위해 행동한다는 생각이다.

■간단한 사고실험만으로도 종의 이익을 위해 개체의 이익을 희생하는 특성이 유전적으로 진화할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유전자를 가진 A형 레밍과, 반대로 개체의 이익을 앞세우는 유전자를 가진 B형 레밍이 있다고 치자.

개체수가 늘어 서식환경이 악화하면 A형 레밍은 집단의 존속(종의 보존)을 위해 해안절벽으로 달려가 바닷물에 뛰어드는 반면 B형 레밍은 자기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려 한다. 자연히 무리 가운데 살아 남는 것은 B형 레밍이고, 그 유전자가 후대로 이어진다(고바야시 시게오 ‘지의 윤리’).

■유전적 특성이 대부분을 결정하는 동물과, 이성과 의지가 본능을 제약하는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나란히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인간 행동의 바닥에도 동물사회의 행동원리가 고여 있다.

고용환경 악화가 고령화사회 도래라는 우울한 전망과 겹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회퇴진’ 연령의 저하를 정당화하는 논의는 물론, ‘고려장(高麗葬)’ 예찬론에 가까운 주장까지 나온다.

레밍의 ‘집단자살’ 오해가 ‘레밍의 지혜’라는 엉뚱한 생각으로 번진 것일까. 고용 확대, 임금 피크제와 짝을 이룬 정년 연장 등 분명한 ‘인간의 지혜’를 외면하고 쉬운 길만 찾으려는 어리석음이 딱 레밍 수준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