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중부 레이테 섬의 초대형 산사태가 발생 3일째가 됐지만 기상 악화와 장비 부족에다 10여㎙나 되는 진흙 수렁으로 구조 작업에 애를 먹고 있다.
특히 17일 산사태 발생직후 통째로 매몰된 초등학교에서 공포에 휩싸인 선생님과 어린 학생들이 구조를 요청하며 보낸 휴대폰 문자메시지 내용들이 속속 확인되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한 여선생님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우리는 살아서 한 교실에 있어요”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으며 한 학생은 “우리는 살아 있어요, 살려주세요”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들의 문자메시지 발송은 얼마 이어지지 못하고 이날 오후부터 멈췄다. 때문에 구조대는 이들이 산사태로 학교가 매몰되기 시작했을 때 빈공간에 갇혀 있으면서 필사적으로 구호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이후 산소공급이 안되면서 질식해 모두 숨졌을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반면 당초 학교에 갇혀 숨진 것으로 알려졌던 이 학교 학생 2명은 이날 부모님의 심부름 때문에 마을을 벗어나 있다 목숨을 건진 것으로 전해지면서 희비가 교차했다.
구조대는 250~300여명의 학생과 교사가 몰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학교에 대해 집중적인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비가 계속 내린 데다 진흙을 파헤칠 특수 장비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자신들도 진흙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위험 때문에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중인 미군 해병 선발대 30여명도 외국군으로는 처음으로 현장에 도착, 구조 작업에 동참하고 있지만 생존자 구조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19일 현재 이번 산사태로 모두 57명이 구조되고 시신 92구를 찾는데 그쳐 사망자는 당초보다 늘어난 1,800~3,000명에 이를 것이 확실해졌다.
각국의 구호 손길도 잇따르고 있다. 국제적십자연맹은 20만 프랑(약 15억원)을 지원키로 했으며 중국도 100만 달러 어치의 구호품을 제공했다. 호주와 태국 정부도 각각 74만 달러, 1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은 필리핀군과의 합동군사훈련을 위해 배치한 6,000명의 병력과 수송기 등을 지원키로 했다.
한편 이번 산사태와 관련,‘환경 재앙’이라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레이테 섬은 1991년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6,000명이 사망하는 등 재해 단골 지역이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벌목과 2주일째 계속된 집중호우로 지반이 약해지면서 참사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필리핀은 1900년 국토의 70%에 달했던 산림 면적이 현재에는 18%에 그치고 있다. 레이테 섬도 코코넛 농사를 위해 지반 침하를 막을 수 있는 나무를 남벌했으며 결국 이러한 환경훼손이 참사를 불렀다는 것이다.
기상 전문가들은 “필리핀이 자연재해에 취약한 이유로 태풍이 연간 20여차례 노출되는 지리적 원인도 문제이지만 지구 온난화 등 급격한 기후변화의 측면도 강하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특히 “적도 해상의 수온을 떨어뜨리고 강풍 등을 동반한 라니냐 현상이 참사의 간접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필리핀 등 아시아에서 빈발하는 재난을 최소화하려면 역내 국가들이 경보 및 재해관리체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쿄(東京)의 유엔대학 부설 환경 및 지속가능개발프로그램 전문가 스리칸타 헤라트는 “아시아에서 최근 비와 관련된 재난이 급증했다”며 “조기 경보체제 구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참사 직전 발생한 리히터 규모 2.6의 약한 지진이 황폐해진 산을 붕괴시켰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대수롭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이라도 합쳐지면 재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권대익 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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