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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인문학자 정명환 선생의 '젊은이를 위한 문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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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인문학자 정명환 선생의 '젊은이를 위한 문학이야기'

입력
2006.02.27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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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원로 인문주의자의 청년을 위한, 청년을 향한 문학으로의 절절한 구애(求愛)가 이 버석거리는 실용 지상의 가슴을 자우룩하게 적시고 있다. 소설가 이인성(전 서울대 교수), 최수철(한신대 교수) 평론가 정과리(연세대 교수) 등 쟁쟁한 문인들이 문학의 큰 스승으로 받드는, 전 서울대 교수이자 현재 학술원 회원인 정명환(77) 선생의 책 ‘젊은이를 위한 문학이야기’(현대문학)다.

제자들이 깐깐하고 엄격하기가 말도 못했다고 전하는 노 스승은, 책에서 ‘~습니다’의 낮고 다감한 어미와 푸근한 문체로 일관한다. 하지만 문학의 본질에 육박하며 청년들을 이끄는 문장의 힘은, 가히 열정의 힘과 관록의 여유가 구현한 드문 품격을 확인케 한다.

몽테뉴가 그의 ‘에세’를 열며 던진 ‘Que sais-je?’(크사주ㆍ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질문처럼, 그는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곧 문학의 궁극적인 질문이라는 이야기로 ‘구애’를 시작한다. 그 질문, 즉 문학의 정신은 곧 끊임없이 회의하는 정신이며, 자성으로 편견을 넘어서는 정신이며, 그럼으로써 너그러움을 낳는 정신이라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심판이나 배척이 아니라…삶을 풍요롭게 하는 원리이며 평화의 기본조건입니다.”(36쪽)

책은 6장으로 구성돼있다. 문학으로의 초대, 창작으로서의 문학, 문학을 통한 앎, 문학과 놀이, 문학과 구원, 이야기를 마치면서 등이다. 본론의 네 장은 단 한 마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그리고 “포괄적 진리와 구체적 진실을 아우르는 참의 삶을 위해” 읽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창작(Homo Faber)과 앎(Home Sapiens) 놀이(Homo Rudens) 구원(Homo Relegios)이라는, 인간의 네 가지 커다란 욕망의 결정체가 곧 문학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문학을 위시한 동서양 문학 거장들의 작품을 예로 들며 그 욕망들의 문맥과 의미를 설명한다. 그럼으로써 책 읽기의 욕구를 충동하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의 본원적인 가르침을 전한다.

입시 논술이라는 목표아래 쓰인 숱한 당의(糖衣)의 문학 소개서나 요약본 사이에서 그의 책이 돋보이는 것은, 이런 대목에서도 확인된다. “여러분은 나의 빈약한 몇 마디의 설명에 의지하지 말고, 이 감격적인 장면을 꼭 읽었으면 합니다.”(‘구원’의 장에서 앙드레 말로의 ‘인간조건’의 의미를 설명하며)

그가 (불)문학을 시작한 것은 1940년대 말이다. 그의 말처럼, “문학을 한다고 하면 굶어죽기 십상으로 여기던” 때였다. “서울 서대문 근처 다방 ‘자연장’이나 명동 ‘돌체’에서 원고지와 씨름하며 근근이 조반석죽하면서도 출세에 눈 먼 속중(俗衆)을 경멸하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그 역시 달라진 세상과 가치 전도의 현실을 부인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 “인정해야지요. 하지만 문학은 삶의 핵심입니다. 렌즈공 스피노자가 밤에 책을 읽었고, 시인 엘리어트도 은행원이었잖아요. 좋은 의미에서 의식의 분절, 이원화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20여 년 전부터 구상해온 것을 지난 한 해 동안 고통스럽게 썼다는 이 ‘청년을 위한 문학 원론’의 끄트머리에 그는 생텍쥐페리의 문장을 옮겨놓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문학을 통해 삶의 의의를 생각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묶인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다”고 썼다. 이 뜨거운 구애에 우리가 화답할 차례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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