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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가정의 '사랑'도 메말랐나요?

입력
2006.02.27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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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63)씨는 요즘 혼란스럽다. 결혼한 지 2년이 넘도록 손자 소식을 들려주지 않는 아들 부부를 서울의 한 성상담클리닉에 끌고 갔는데 아들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들 부부가 결혼 후 한번도 섹스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섹스 같은 거 관심 없어요. 그냥 친구처럼 사는 게 좋아요.” 김씨는 그런 아들 부부를 이해할 수가 없다.

결혼 3년차 정모(33)씨는 잠자리에서 아내와 언제 마지막으로 ‘하늘’을 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래도 욕구 불만이니 하는 것은 없다. “맞벌이라 밤에는 피곤하고 아침엔 일찍 일어나야 해 신혼 때도 자주 하지는 못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횟수가 뜸해지더니 이제는 거의 계절 맞이 행사가 됐어요.” 그는 “섹스가 우리 결혼생활에 꼭 필요한 건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1개월에 채 한번도 성 관계를 갖지 않는 이른바 섹스리스(sexless)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한국성과학연구소가 기혼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섹스리스 부부는 무려 28%에 달했다. 20대 부부 중에도 12%가 섹스리스였다. 지난해 말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나우&퓨쳐는 30~40대의 26%가 섹스리스라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따로 국밥’ 부부가 되는 원인은 다양하다. 젊은 부부은 “섹스가 흥미 없어서” 또는 “각자의 생활을 존중하다 보니 시간에 안 맞아서”라는 이유로 ‘밤일 생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방송 일을 하는 전모씨는 “아내와 잠자리를 안 한 지 3개월째다. 아내도 야근이 잦은 직업이라 시간 맞추기가 힘들다. 둘 사이에 문제는 없다. 다만 내 몸에 사리가 너무 많이 쌓일까 봐 걱정은 된다”며 웃었다.

아이 때문에 은밀한 시간을 못 갖는 부부들도 많다. “아이들 눈치 보느라 1개월에 한번도 힘들다”는 회사원 송모씨는 “요즘 아이들은 왜 이리 밤에 잠이 없는지 모르겠다. 따로 시간을 내 모텔에라도 가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부 관계에서 이상적인 섹스의 횟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손만 잡고 자도 서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 자체로 아름다운 부부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부부간 성 욕구가 불균형을 보일 때이다. 한쪽은 원하는데 다른 쪽이 의도적으로 피하는 경우이다. 이는 곧바로 가정의 불화로 이어지는 ‘시한 폭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성과학연구소의 조사 결과, 성생활에 만족하는 기혼여성 가운데 ‘결혼생활이 만족스럽다’고 답한 사람은 83%이다. 반면 성생활이 불만이라고 말한 여성들 중에 결혼생활에 만족하는 사람은 11%에 그쳤다.

2년째 남편과 각방을 쓰고 있는 주부 박모씨가 이런 경우다. 출산 뒤 남편이 아이 때문에 잠을 설칠까 봐 따로 잔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처음엔 남편은 침대 위, 박씨와 아이는 바닥에서 잤다. 하지만 박씨는 이마저도 남편에게 부담이 될까 봐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2개월에 한번씩은 갖던 잠자리가 끊긴 지도 1년이 넘었다.

“이러다 부부 사이에 문제 생기는 것은 아닌지 덜컥 걱정이 되더군요. 그래서 합치자고 했죠. 그런데 남편 반응이 시큰둥한 거에요. 같이 자면 어색하고 불편할 것 같다나요. 남편 품이 그리울 때 문 두드리고 사정하기도 자존심 상하고….”

성적인 불화의 원인을 두고 남편과 아내는 평행선을 달린다. “아내는 성 관계에 관심이 없고 테크닉도 없다. 내 욕구를 만족시켜 주지도 못한다”는 남편의 푸념에 아내는 “남편은 자기 욕심만 채우고 내 기분은 신경 안 쓴다. 힘이나 테크닉이 좋은 것도 아니면서…”라고 맞받는다.

며칠 전 한 다국적 제약회사가 한국 미국 일본 프랑스 등 4개국 기혼남녀를 조사한 결과, 한국 부부의 성 관계 만족도는 미국 프랑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불만은 특히 아내 쪽에서 많이 쏟아진다. 우리 같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피곤하다” “가족끼리 어떻게…”라며 무심히 등을 돌리는 남편에게 당당히 요구할 아내는 그리 많지 않다. 자존심 상해가며 ‘밝히는 여자’로 낙인 찍히기도, 남편에게 거부 당해 ‘비참한 여자’가 되기도 싫기 때문이다.

성과학연구소 이윤수 소장은 “성적인 문제로 부부간에 불만이 쌓이다 보면 이혼의 빌미가 될 수 있다”며 “이는 곧바로 자녀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섹스리스의 원인이 다양하듯 그 해결책도 여러 가지다. 부부가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터놓고 대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일환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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