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을 부인한 학자에게 유죄가 내려졌다.
오스트리아 법원은 20일 16년 전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발언을 한 영국 역사학자 데이비드 어빙(67)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판결이 유럽의 표현의 자유와 무슬림의 종교적 신념이 충돌한 마호메트 만평 파문이란 미묘한 시점에 나와 주목된다.
어빙의 문제 발언은 1989년 11월 오스트리아의 한 강의에서 비롯됐다. 그는 “아우슈비츠 가스실은 존재하지 않고 홀로코스트는 하나의 신화”라며 600만 유대인 학살을 부인했다.
이날 재판에서 그는 문제 발언을 번복한 뒤 후회한다고 진술했다. “역사는 멈추지 않고 성장하는 나무와 같아 많은 자료가 뒷받침되면 더 많이 배우게 된다”고 ‘전향의 변’을 했다.
그러나 검찰은 “그가 몇 마디를 했을지 모르나 이 말들은 극우주의자에게 이념적 논리를 제공한다”고 단죄를 주문했고, 8명의 재판관은 만장일치로 감옥 행을 결정했다. 어빙은 이번 판결로 오스트리아 법률책에서 표현의 자유가 삭제됐다며 항소할 뜻을 비췄다.
주목할만한 것은 유럽 언론들의 반응이다. 만평 파문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편적(절대적) 자유로 보던 언론들은 이번에는 그의 주장에 적극 동조하지 않는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인 자유는 아니고, 말을 행한 장소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이번 판결이 보여준다”고 짧게 언급했다. BBC 방송만이 “어빙 판결이 유럽의 표현의 자유를 시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므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은 만평파문을 의식한 듯 “표현의 자유에 반 유대주의가 연루되면 범죄가 된다”며 “이슬람이 표현의 자유에 의해 모욕받으면 어찌 되는 거냐”고 되물었다. 2000년 어빙의 주장을 비판한 명저 ‘홀로코스트 부정’을 낸 뒤 그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던 데보라 립스타트는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어빙 판결이 홀로코스트의 실체적 진실 논란으로 번질지도 관심거리다. 홀로코스트는 세계의 동정여론을 배경으로 이스라엘 건국을 이끈 촉매제가 됐지만,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 분쟁의 씨앗이 된 역사적 사건이다.
최근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잇단 홀로코스트 망언처럼 이슬람권에는 ‘600만 대학살’이 과장돼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스라엘이 증언에 의해 추정한 이 학살 숫자에 대해선 유대인이 아닌 사람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어빙도 유대인 600만 학살 부분은 과장된 면이 있다며 끝내 수정하지 않았다.
어빙에게 적용된 ‘홀로코스트 부정 금지법’은 독일 벨기에 체코 프랑스 이스라엘 리투아니아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스위스 등 11개국에도 채택돼 있다. 독일에선 홀로코스트를 부정한 에른스트 춘델(66) 사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