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촌에서 하숙을 치는 이모(54ㆍ여)씨는 지난해 큰 맘 먹고 모든 방을 화장실이 딸린 원룸 형태로 리모델링 했다. 화장실을 함께 쓰는 것에 학생들의 불만이 많았던 탓이다. 출입문도 카드키로 바꿨다.
이씨는 “바꾸고 나니 이걸 하숙집으로 부르는 게 맞는지조차 헷갈릴 정도인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으니 어쩌겠느냐”고 말했다.
퇴출 위기에 몰린 대학가 하숙집들의 살아남기 노력은 눈물겹다. 개인 생활을 중시하는 신세대들에게 ‘정(情)’이라는 무기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게 엄연한 현실. 집을 개조해 원룸처럼 꾸미는 게 최선이긴 하지만 비용이 문제다.
때문에 이것저것 온갖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그리 신통치 않다. 신세대 학생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으로 식단을 꾸미고, 식사 시간도 자유롭게 하는 것은 기본. 밥값이 포함된 하숙집 월세가 부담스러운 학생을 위해 아예 실제 먹은 끼니수만 따로 계산하는 ‘식사 쿠폰제’를 도입한 곳도 생겼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손님’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하숙집이라면 처음부터 거들떠 보지 않으려는 학생들이 상당수인 탓이다. 이 때문에 하숙집 주인들은 기존 하숙생이나 예전에 하숙을 했던 학생들을 통한 신입생 끌어오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20년 가까이 하숙집을 하고 있는 박모(59ㆍ여)씨는 “90년대만 해도 졸업 후 하숙집을 떠난 하숙생들이 월급날이면 옛날 하숙집을 찾아 후배들에게 한 턱 내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며 “전통있는 하숙집은 방이 빠지기가 무섭게 채워졌다”고 ‘좋았던 시절’을 떠올렸다.
박씨는 “하숙생들을 모을 뾰족한 방법이 없어 아는 학생들에게 이리저리 부탁해 놓았지만 개학이 다가오는 데도 아직 별 연락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이정도 노력을 할 수 있는 건 나이가 젊고 의욕이 있는 경우다. 거의 평생을 전통적 하숙집으로 운영해 온 주인들은 변해버린 요즘 세태에 두 손을 놓고 있다. 서울 서강대 앞에서 30년간 하숙을 해왔다는 이모(65ㆍ여)씨는 2~3년 전부터 하숙생을 거의 받지 못했다.
10개나 되는 방에 현재 생활하는 하숙생은 고작 1명. 그나마 잠만 자는 직장인이다. 하숙 전용으로 1970년 대 말 남편이 직접 3층 건물을 지어올릴 때만 해도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씨는 “개강이 다가올 때마다 학교 주변에 전단도 붙여보고 생활정보지에 광고도 내보지만 하숙을 문의하는 학생은 하루 한 명 꼴도 안 된다”고 푸념했다. 이씨는 집을 헐고 원룸으로 다시 지으라는 주변의 권유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서울 흑석동 중앙대 앞에서 방 5개로 하숙집을 운영하는 김남순(58ㆍ여)씨는 “요즘은 원룸 등에 학생들을 뺏겨 대부분의 하숙집이 개점 휴업 상태”라며 “이러다간 조만간 하숙집이 아예 사라져버릴 것 같다”고 말했다.
90년대 초 신림동에서 하숙을 했다는 직장인 황모(34)씨는 “주인 아저씨가 상품을 걸고 하숙생들이 장기 대결을 벌이던 일, 술 먹은 다음날 아침 아주머니가 꿀물을 슬쩍 문 앞에 두고 가시던 기억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며 “시대가 변해 힘들다지만 이런 정겨운 하숙집들이 살아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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