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대법원장이 연일 재판의 독립과 관련된 중대 발언을 하고 있다. 두산 비자금사건 1심 판결을 비판한 데 이어, 다음 날에는 이른바 ‘국민 재판론’으로 이름 붙일 만한 얘기를 했다.
요컨대 재판권을 수여한 주체는 국민이므로 재판은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지, 판사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물론 그의 얘기는 재판결과가 일반적인 국민의 법감정과 크게 괴리될 만큼 공정성을 상실하는 것을 경계하는 원론 차원의 언급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사법권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던 법원의 아픈 과거에 대한 반성도 깔린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더라도 이런 취지의 발언은 현직 대법원장이 공적으로, 그것도 누차 강조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자칫 일선 법관에게 판결 상의 압력으로 작용, 재판의 독립성을 저해할 소지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사법 독립의 핵심은 재판의 독립이며 이는 법관의 자율성 보장을 전제로 한다.
합의부 재판에서도 법관마다 독자적 의견이 있을 수 있고 그 의견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는 법인데, 법관의 인사권을 쥔 사법부의 수장이 어떤 식으로든 자율성을 제약할 수 있는 발언을 반복하는 것은 신중치 못하다.
법관의 판단에는 자율성과 함께 사회적 책임도 수반되는 것임을 모르는 바 아니나, 이 대법원장의 발언처럼 사회적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법관 판단의 자율성을 억제하고 나아가 사법 독립성 자체를 침해할 수 있다.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판결”은 헌법과 법률에 의거하기보다 특정 시기의 포퓰리즘에 휩쓸리는 판결을 유도할 수도 있는 위험한 개념이다.
이런 점에서 이 대법원장이 같은 자리에서 “법관의 독립을 지켜내기 위해 어떤 희생이라도 치를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한 말은 모순된 것처럼 들린다. 법관이 그로부터 자율성을 지켜내야 하는 외부 대상에는 대법원장과 같은 법원 행정조직 상의 상부기관도 당연히 포함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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