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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관성적' 비판과 '관성적'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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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관성적' 비판과 '관성적' 변명

입력
2006.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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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석학 요한 갈퉁은 비판예찬론자이다. 특히 자신과 같은 학자들은 비판에 우선가치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아무한테나 비판하라는 것은 아니다.

강자(top dog)와 약자(underdog) 중 강자에 대해서 학자들이 비판의 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강자와 약자의 입장 중 무엇이 옳은지는 사안별로 다 다르고 관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기본적으로 학자는 약자의 편에 서서 강자를 비판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갈퉁은 약소국보다는 강대국, 시민사회보다는 정부, 야당보다는 여당, 노동자보다는 사용주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학자의 기본 역할은 강자 비판

물론 괜히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갈퉁이 학자의 기본 역할을 강자에 대한 비판에서 찾은 까닭은 힘의 균형을 위해서다. 상대적 관점에서만 시비를 논할 수 있는 사회문제에서 힘의 균형은 항상 강자 쪽으로 가 있으니, 특정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균형적 입장을 취해야 하는 학자라면 약자의 입장에서 강자를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갈퉁의 생각은 시공을 초월해 공감을 자아낸다. ‘만년 야당’으로 매 정권마다 비판의 각을 세우는 사람이 특히 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이유라 하겠다.

그러나 집권당을 비롯한 강자 측은 학자의 기본적인 비판 역할을 그리 수긍하는 것 같지 않다. 최근 참여정부 3주년을 맞아 여러 언론기관에서 실시한 학자그룹들의 국정평가에 대해 청와대 측은 학자들이 관성적 비판에 빠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 정부의 공과를 공정히 평가하지 않고 습관처럼 비판에 치중했다는 것이다.

그럴 지도 모른다. 청와대 입장에선 억울한 면이 많을 것이다.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국정과제에 대해 심한 비판을 들으면 화가 나지 않겠는가. 비판적 신문기사나 칼럼에 대한 반론권을 주장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학자들의 비판적 국정평가가 옳은지 그른지 명확히 결론 내릴 순 없다. 다만, 갈퉁의 생각처럼 학자의 기본적 역할은 강자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을 청와대 측이 인지해줄 필요가 있다. 학자그룹이라도 그러한 역할을 맡음으로써 사회적 힘의 균형이 조금이나마 유지될 수 있지 않겠는가. 설혹 과장된 비판이더라도 비판은 순기능을 지닌다.

비판은 절대적 선악을 가릴 수 없는 사회관계에서 강자와 약자 간 균형을 잡고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강자인 집권 측이 비판에 대해 좀더 관대 겸허해질 수 있을 것이다.

●집권세력은 관대 겸허해져야

정권의 현실이익을 위해서도 여러 비판을 관성적 비판이라고 무시하고 관성적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 것이 좋다. 국민도 알 건 안다. 만약 학자들의 평가가 터무니없다면 국민이 거기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정권 측이 비판 하나하나에 과민반응을 보이고 아니라고 강변하면 오히려 국민의 의구심을 증폭시킬 뿐이다.

1992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할 때, 경제가 나쁘다는 세간의 비판에 대해 궁색한 부인과 변명으로 일관한 탓에 미 국민은 엘리트적인 부시가 서민의 체감경기를 너무 모른다는 인식을 하게 되어 부시의 인기도가 더욱 떨어졌다.

이 사례가 시사하듯이, 좀 억울하더라도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는 태도를 보일 때 국민의 지지가 오히려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억울함을 당할지라도 굳이 변명하려고 하지 말라.” 이 말은 몇 년 전 어느 기업 소식지 한 모퉁이에 작게 실린 처세의 원칙이다. 일상생활뿐 아니라 정부 국정운영과 관련해서도 설득력을 지닌다. 그 원칙 밑엔 이런 부연이 붙었다: “억울함을 변명하다 보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길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의 문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임성호<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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