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대관령 아래 산촌에 살던 어린 시절, 지금 이 철에 나는 무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봄 칡을 떠올렸다. 하기야 어린 시절, 칡이면 다 봄 칡이지, 여름 칡, 가을 칡이 어디 있겠는가.
어느 마을이나, 또 어느 마을의 어느 산이나 유독 봄이 빨리 오는 곳이 있다. 다른 곳은 산수유가 눈을 뜰 생각을 않는데, 벌써 노란 실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언덕이 있다. 내 고향 마을엔 마을 뒤편 모래사태 쪽이 그렇다. 겨우내 쌓였던 눈도 그곳이 제일 빨리 녹고, 또 지금 철이면 얼었던 땅이 풀리며 사태 위쪽의 모래들이 사르르, 사르르 아래로 흘러내려온다.
그 모래사태에 가면 괭이로 파지 않고 그냥 땅에 묻힌 넝쿨만 힘껏 잡아당겨도 굵은 소시지 묶음 같은 햇칡이 달려 나온다. 어른들은 그곳 모래사태에서 칡을 파내면 산이 더 허물어진다고 야단을 치지만, 우리는 봄마다 어른들 몰래 그곳에 칡을 파러 간다.
껌이라는 걸 일년에 몇 개 씹어 불지 말지 하던 그 시절, 칡을 한 번 붙잡기 시작하면 몇 시간동안 군것질 삼아 그것만 씹는다. 나중엔 내 턱이 내 턱 같지 않다. 올 봄에 칡 한번 파러 가볼까, 생각중이다.
소설가 이순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