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신문의 마호메트 만평이 부른 전세계 13억 회교인들의 분노와 유혈사태는 민주주의를 위한 소중한 가치인 언론자유가 아직 지구촌 사회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나 위험하고 천박한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파문은 지난해 9월30일 덴마크 일간지 우란스 포스텐에 이슬람 예언자 마호메트를 천국에 도착하는 자살폭탄 테러리스트를 환영하고 머리에 폭탄 모양의 터번을 한 모습으로 묘사한 만평이 실리면서 촉발됐다.
만평을 그처럼 그리고 보도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만평의 내용은 회교도가 테러리스트라는 위험한 등식을 연상하게 만드는 지독한 편향을 담고 있었으며 더욱이 다른 사람들이 믿는 종교를 모욕하는 신성모독의 요소가 분명히 있었다. 만평은 자유스런 표현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정신적 위해를 가하고 인류의 신앙과 문화적 가치를 훼손하는 불공정 편파 보도였던 것이다.
덴마크 이슬람 단체들은 만평 삭제와 사과를 요구했고, 덴마크 주재 회교권 11개 국가 대사들은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총리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총리는 언론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회교권 대사들의 문제 제기는 언론의 공정 보도와 문화적 외교에 관한 것일 터인데, 총리는 언론자유를 방패로 대화를 차단해 버렸다. 그러나 덴마크판 언론자유 논란은 노르웨이, 프랑스, 독일 등 이웃 유럽 국가들과 러시아, 미국 등 서방 40여개국의 신문들이 잇따라 문제의 만평을 그대로 게재하면서 지구촌 차원의 갈등으로 비화됐다.
일부 신문들은 무슬림의 반발로부터 언론자유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명분까지 내세우며 만평을 게재했다. 그러나 신문들은 이웃나라 덴마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언론자유와 종교의 갈등이 충분히 뉴스거리가 되고, 게다가 도대체 문제의 만평이 어떤 내용인지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도 채워줄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말하자면 신문들의 상업주의가 어느새 ‘언론자유 운동’으로 둔갑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신문들이 문제의 만평 내용이 얼마나 종교적 편견과 문화적 무지, 언론의 무책임성을 드러내고 있는지 심각한 비판을 했다는 보도를 거의 접할 수 없다. 상업성에 포박된 신문들의 언론자유에 대한 인식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서방 언론들의 이 같은 무책임하고 얕은 수준의 언론자유의 발로는 이제 만평 파문을 지구촌 이슬람권으로 퍼뜨리는 기폭제가 됐다.
물론 그 정도의 만평으로 지구촌 이슬람권이 소요, 유혈사태에 휘말리는 현상은 이해하기도, 지지하기도 힘들다. 이성과 합리가 실종된 군중심리가 작동된 흔적이 역력하고 폭압적인 정권이 소요사태를 조직, 선동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들린다.
회교권 사회야 말로 인권 존중과 건전한 여론 형성을 위한 민주적 공론장 제도의 실천이 절실히 필요하다. 서구식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도 서서히 도입되고 있다.
마호메트 만평 파문은 그러나 정작 서양의 언론 자유가 실천 차원에서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드러냈다. 표현의 자유는 인권, 인간의 권리와 같은 존재론적 자유이다. 따라고 언론의 자유는 근본적으로, 원천적으로 보호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언론 자유가 좋은 언론 보도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언론의 자유는 좋은 저널리즘, 공정한 보도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언론이 형식적인 표현의 자유에 기대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다른 문화의 가치를 배려하지 않을 때 언론 자유는 천박해진다.
마호메트 만평 사태는 성찰과 숙의, 배려가 없는 언론자유는 너무나 손쉽게 정치적 구호나 상업적 도구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언론자유의 변질 가능성은 남의 얘기가 아닐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가, 그리고 언론이 표현의 자유를 얘기할 때 그것이 진정 가리키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의 성찰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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