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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분열'은 우리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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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분열'은 우리의 운명

입력
2006.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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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가 펴낸 월간 ‘북한동향’에 실린 ‘공동사설 주요 특징’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북한 신문의 신년 공동사설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용어는 ‘우리’로,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특히 많이 사용됐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있되 ‘나’는 없었던 시대가 1980년대라 한다면, 90년대는 ‘나’는 있되 ‘우리’가 보이지 않았던 시대였다는 말이 있다.

2000년대에도 여전히 ‘나’는 있되 ‘우리’가 보이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재발견 욕망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디지털 문화에 빠져들수록 아날로그 문화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것처럼, 늘 ‘나’로 격리된 사람들은 가끔 ‘우리’가 되고 싶어하는 잠재적 욕망을 품고 살아간다.

●80년대는 '우리' 90년대는 '나'

그 잠재적 욕망의 대폭발이 2002년의 ‘월드컵 신드롬’이었다. 그걸 가리켜 “현실을 망각한 집단적 히스테리 증상”이니 “뉘른베르크의 나치대회를 연상케 하는 획일화된 전체주의적 태도”니 하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건 그만큼 ‘우리’에 굶주려 있었다는 증거일 뿐 한곳에 모였던 군중은 다시 ‘나’만 있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로 대변되는 통합은 이젠 꿈이 되었다. ‘나’로 대변되는 분열이 우리의 운명이다. 통합은 좋고 분열은 나쁜가? 아니다. 그 내용이 중요하다. 좋은 내용으로 사회가 분열보다는 통합 지향적으로 가면 좋겠다는 건 모든 이들이 원하는 바다. 그러나 이젠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괜한 ‘남 탓’을 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크게 보아 5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념과 거대 서사의 퇴조다. 이게 언젠간 다시 돌아올망정, 아직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게 분명하다. ‘우리’를 내세워야 할 명분이 사라진 셈이다. 명분은 반감ㆍ혐오와 같은 ‘안티 정서’로 대체되었다. 개혁은 ‘우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을 통제하는 것이 되었다.

둘째, 다문화주의의 부상이다. 그간 이념과 거대 서사 밑에 억눌렸던 다양한 목소리들이 각자의 정당한 몫을 요구하고 있다. 서구에선 좌파 진영의 해체를 염려하는 좌파까지 우파의 다문화주의 공격에 가세했지만, 한국에선 다문화주의는 아직 미덕이다.

셋째, 보편주의의 확산이다. 세계화로 날개를 단 보편주의는 한국인 특유의 동질성ㆍ밀집성과 그에 따른 집단주의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집단주의는 보수, 개인주의는 진보’라는 사조가 날로 세를 더해 가고 있다.

넷째, 생산방식의 변화다.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는 가고 다품종 맞춤생산의 시대가 왔다. 상품논리의 지배하에 있을망정 각자 튀는 개성을 고무ㆍ찬양하는 것이 시대정신이 되었고, 이는 정치사회 영역마저 지배하게 되었다.

●이젠 '통합'보다 '연대'에 목표를

다섯째,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이다. 인터넷은 그 속성상 분열의 매체다. 통합 기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빈약한데다 그마저 분열적 성격을 갖는 ‘작은 우리’들을 양산할 뿐이다. 인터넷은 통합지향적인 기존 제도와 조직을 무력화시키는 ‘직거래 파워’로 분열을 촉진한다. 많은 경우 명분을 앞세운 분열 담론의 종착지는 자기세력 증식이다.

역설이지만,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나’로 존재하는 대중은 더욱 ‘우리’에 갈증을 느끼게 되었다. 많은 이들의 개탄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ㆍ국가주의가 정략적 이용의 자원으로 활용되면서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분열’은 우리의 운명이라는 걸 인식하는 건, 이제 우리의 목표가 ‘통합’이 아니라 ‘연대’가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줄 수 있다. 자꾸 되지도 않을 통합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증오도 일어나는 것이다. ‘분열’은 우리의 운명이지만, ‘연대’는 나의 운명이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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