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제작 중에 ‘홀리데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획득한 대통령 직선제에도 불구하고 양 김의 분열 덕으로 정권을 장악한 노태우 정권이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그 성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던 88년 가을에 터져 나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탈주범 일당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것이다.
주범 지강헌이 마지막 순간에 틀어놓고 인질극을 벌렸던 비지스의 노래 제목을 딴 이 영화는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한 중요한 화두들을 제공해주고 있다.
●스크린쿼터 축소 이해안가
이 영화가 화제가 된 것은 작품성과 대중성에도 불구하고 배급사와 영화관과의 알력으로 나흘 만에 종영됐다가 영화팬들의 항의로 상영을 재개하는 촌극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렸지만 홀리데이 사태는 영화산업에서 특정작품이 관객들을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영화관의 상영결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홀리데이 사태를 바라보면 최근 노무현 정부가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기로 결정하면서 미국의 압력에 의해 스크린 쿼터를 대폭 축소키로 한 것에 대해 왜 영화계가 그처럼 격렬한 반대를 하고 있는지 이해를 하게 된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은 1년만 버티면 미국과 이스라엘을 제외한 140여 개국이 서명한 문화다양성 협약, 즉 문화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므로 다양한 문화를 지키기 위해 보호해야 하다는 협약이 효력을 발생하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가 1년을 못 참고 스크린 쿼터 축소를 추진하고 있는 이유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도 마찬가지다.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가능하다. 그러나 관념론적이고 무국적인 시장만능주의자가 아니라면 최소한 자기 나라보다 강한 경제국과는 될 수 있으면 늦게 하고 약한 경제국과는 빠르게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이 점에서 노 정권이 경제적으로 훨씬 앞선 미국과의 협정에 적극적인 것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물론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으로 대미 무역적자가 늘어나겠지만 그만큼 나머지 국가들에 대한 경쟁력이 강해져 득이 더 크다는 것이 노 정권의 논리이다. 즉 세계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므로 이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공격적인 세계화 전략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가는 비슷한 전략을 추진했던 김영삼 정권이 97년 말에 우리에게 어떠한 결과를 선사했는가를 살펴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영화의 내용도 주목할 만하다. 영화에서 잘 그려주고 있듯이 탈주범들은 인질극의 막판에 언론을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해 ‘유전무죄, 무전유죄(돈이 있으면 무죄, 없으면 유죄)’라는 절규를 토해냈는데 이 같은 현실은 17년이 지난 지금 더하면 더했지 나아진 것 같지 않다. 그 단적인 예가 수백억 원의 회사공금을 횡령해 생활비 등으로 흥정 망정 쓴 두산그룹 총수일가 횡령 사건이다.
●유전무죄도 나아지지 않아
특히 박용성 전 회장의 경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아 정부의 개혁정책과 노동운동 등에 대해 갖가지 독설을 퍼부어 왔다는 점에서 그의 비리는 충격적인데 이들 일가에 대해 검찰이 불구속 기소한데 이어 법원마저도 집행유예라는 솜방망이 판결을 내린 것이다.
오죽했으면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분식회계를 한 월드컴사의 회장이 징역 25년을 선고받은 예처럼 미국에서는 비리관련 기업인은 중형을 선고받는 데 비해 우리 사회에서 화이트 컬러 범죄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우려를 표명했겠는가. 또 이용훈 대법원장이 두산 판결로 법원의 신뢰가 훼손됐다고 공개비판했겠는가.
미국 같으면 중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있어야 할 두산 일가들이 영화 홀리데이가 고발한 유전무죄의 원리에 의해 홀리데이나 즐기고 있으니 ‘홀리데이 인 두산’이고, 부자 천국 ‘대한민국 만만세’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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