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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탄생 100년 안익태 재조명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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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탄생 100년 안익태 재조명돼야

입력
2006.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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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라는 인물의 상징성은 절대적이다. 안익태 탄생 100주년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요즈음 우리 문화계가 들썩거리는 느낌이다.

안익태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들이 계획되어 있다. 그러한 행사들과 병행해서 음악가 안익태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음악가로서의 안익태의 면모는 세 가지 측면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첼리스트'로서의 안익태의 활동이 밝혀져야 한다. 그는 첼리스트로서 음악가 활동을 시작한다.

1928년 4월에 이미 서울, 개성, 평양에서 순회 첼로독주회를 개최하였으며, 동경 유학 후 귀국했던 1930년 당시 한국의 악단에서 안익태는 '조선이 낳은 오직 하나인 첼리스트'로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미국에서의 초창기 활동도 역시 첼리스트로서였다.

'작곡가'로서의 안익태도 아직 많은 부분이 밝혀져야 한다. 사실 <애국가> 와 <한국환상곡> 를 제외하고 안익태 작품들에 대해서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바는 별로 없다.

다행스럽게도 지난해 유족들로부터 기증받은 자료들 중에 그간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교향시 <포르멘토르의 로 피> 와 <마요르카> , 피아노 독주곡 등 새로운 작품들이 발굴되었다. 또한 안익태 선생이 <대한적십자가> 의 작곡가라는 사실도 이 자료들을 통해 새롭게 밝혀졌다. 이렇듯 새로운 작품들이 발견되어 작곡가 안익태 연구가 탄력을 받을 수 있어 기쁘다.

'지휘자' 안익태의 면모를 밝히는 데는 먼저 안익태의 지휘 활동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 필요하다. 그 당시 국내외 신문들을 통해 알려진 안익태의 활동상에 대해 현지에서의 자료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독일에서 안익태를 연구하고 있는 학자들을 통해서 안익태가 유럽 유수 악단을 지휘한 것이 사실로 밝혀지고 있는데, 이러한 작업이 계속된다면 나라 없던 시절 외롭게 외국에서 '코리아'를 알리려던 안익태의 업적이 확실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 안익태의 생애와 관련해서도, 1936년 베를린올림픽 개막식의 <애국가> 제창 여부, 스승 슈트라우스를 만나게 된 계기, 그와 한국악단과의 관계 등 밝혀져야 할 부분들이 산재해 있다. 당시의 자료들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안익태 생애와 관련된 모든 부분이 명확해질 수는 없겠지만, 안익태의 음악적 세계를 밝히려면 그의 생애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자료가 필요하다.

안익태 탄생 100주년이라는 것이 계기가 되어 안익태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올 한 해 동안 다각적인 연구가 이루어져 '음악가' 안익태와 '인간' 안익태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내려지기를 바란다.

그러한 작업들을 통해서 아무도 다른 나라의 곡조에 애국가 가사가 붙여져 노래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자각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때, 사명감을 가지고 새로운 곡을 만들 결심을 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 안익태의 업적이 더욱 빛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개별 연구 성과들의 집적(集積)을 통해 잃어버렸던 우리 음악근대사를 되찾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전정임<충남대 음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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