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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밀가루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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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밀가루 졸업식

입력
2006.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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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와 졸업식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아무 관계도 없다. 그런데 왜 졸업식 날엔 그렇게 밀가루를 뿌리는 것일까. 교복은 또 왜 찢는 것일까.

엊그제 시내를 지나가다가 밀가루 범벅을 한 채 학교 앞 거리로 나온 고등학생을 보았다. 다들 눈살을 찌푸리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저 전통 같지 않은 전통은 참으로 오래되어 30여 년 전 고등학교 졸업식 날, 내 모습 역시 저러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1월 겨울방학중에 졸업식이 있었고, 졸업식과 대학입학시험이 비슷하게 치러졌다. 강릉의 각 학교들이 한 날에 졸업식을 했다. 그러면 각 학교 교문마다 밀가루를 든 동네 선배들과 후배들이 분산 배치 되었다.

내일이 대학시험을 보러 가는 날인데, 교복도 외투도 밀가루 범벅이다. 그때는 형제도 많고 옷도 귀해 그것 말고는 당장 입을 게 없는데, 더구나 면접시험 때 교복을 입고 착실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 옷이 밀가루 범벅이 되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가 얼른 내 몸에서 그것을 벗겨 빨아 밤새 뜬눈으로 화로에 말렸다. 요즘 아이들이 별스러운 게 아니라, 어느 시절 어느 때나 그 나이가 어른들 눈에는 위태위태해 보이는 것이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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