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발간을 계기로 친일 문제 등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문학세계사의 계간 ‘시인세계’ 봄 호가 친일 문학 특집을 마련했다.
‘시인세계’는 ‘단죄’를 위해서가 아니라 ‘천형의 족쇄’를 풀어주기 위해서라고 취지를 밝혔다. 문학성이 박약한 몇몇 친일 작품 혹은 작가 생애에서 극히 일부의 시간을 솎아내 그것을 준거로 문학적 생애 전체를 저울질하는 어리석음을 그만두자는 것이고, 역사적 맥락 속에서 그 과오의 경중(輕重)을 가리자는 것이다.
친일 문학인에 대한 유연한 입장을 견지해 온 문학평론가 유종호(연세대 특임교수)씨는 ‘친일 문학에 대한 소견’에서 그 입장을 상술한다. 즉, 일제 말기의 특수 사정을 무시한 채 현상만을 두고 반일과 친일의 획일적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피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친일파에도 원조가 있고 아류가 있다.
또 경중의 차이가 있다.…일제 말 전시 국민 총동원 체제에 동원된 인사들을 주로 거론하고 규탄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날 뿐 아니라 정치적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는 혐의가 있다.…(일제 말 전시체제에서 이뤄진) 마지못한 친일 언행을 문제 삼는다면 남아 날 국내 잔류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임종국의 ‘친일 문학론’에 거론된 친일 작가가 160명에 육박하는 반면 친일 문장을 남기지 않은 작가는 윤동주 번영로 등 15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단죄 일변도보다는 정황에 대한 검토와 개개 문인에 대한 변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친일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정지용 이용악 유치환 시인을 별도로 지칭, 이들의 사소한 흠 혹은 ‘협력의 시늉’을 들어 문학 자체를 폄하하기보다는 “과도한 읽어 넣기를 철회해서 우리 문학의 자산으로 수용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밝혔다.
반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 평론가 박수연씨는 “친일 문학은 문인들의 내적 요구가 일정하게 반영된 언어 구성체”이며 “단순히 일제의 강요에 따른 역사적 부산물만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광수 주요한 김동환 김억 등의 ‘국민주의’, 서정주 김종한 등의 ‘언어미학주의’, 김용제 이찬 등의 ‘전체주의’를 들며 “시대적 이념을 내재화했던” 적극적 친일 문학의 사례로 들었다.
논쟁의 한 가운데에는 미당 서정주가 있다. “(미당의 노골적 친일) 창작 활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시인으로서 그의 전 생애에 쌓아올린 창작의 성과가 그 정치적 책임으로 무시되거나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평론가 이경호) “(해방 이후 생의 이력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친일시’는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통어하는 프로그램이 노출된 형태였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은가 생각된다.”(평론가 심원섭ㆍ와세다대 객원교수)
심 씨는 또 주요한과 이광수를 들며 “이들의 친일시는 일본인보다 더 엄숙하고 비장하면서도 그 이면에 작위성이나 상투성, 무성의함이라 할 만한 것이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의도적이며 조직적인 ‘신념형 친일’을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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