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의 소재로만 활용됐던 러시아 명작 소설들이 줄줄이 러시아 영화 감독에 의해 영화나 TV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2일 이런 현상을 1930년대 ‘전함 포템킨’의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감독 등이 활약했던 소련 영화 전성기에 견줄 수 있는 새로운 영화혁명이라고 평가했다.
가장 상징적인 영화는 ‘닥터 지바고’.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동명 소설을 1965년 할리우드의 데이비드 린 감독이 영화화한지 무려 41년 만에 러시아인의 손에 의해 TV 영화로 거듭난다. 구 소련 시절 금지소설로 분류됐던 이 작품이 영화로 제작되는 것도 처음이다. 러시아 NTV는 올 5월 8시간 분량의 이 영화를 내보낼 예정이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도 러시아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앞서 마하일 불가코프의 명작 ‘거장과 마르가리따’는 지난해 12월 TV 영화로 만들어져 러시아 시청자의 절반 이상을 사로잡는 경이적인 기록을 낳았다.
스탈린 치하 강제수용소의 군상을 풍자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소설 ‘제1 원’도 TV 영화로 제작돼 지난달 말 러시아 TV에서 방영됐다.
닥터 지바고를 제작중인 알렉산드르 프로쉬킨 감독은 “데이비드 린 감독을 존경한다”며 “하지만 그의 영화는 미국 영화일 뿐”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인의 작품을 러시아안이 해석해 영화로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 소설을 러시아인이 해석하지 않음으로써 기존 영화에 많은 오류가 숨어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린 감독은 슬라브인과 비슷한 금발의 배우 줄리 크리스티를 지바고의 연인 라라로 캐스팅했지만 원작은 라라가 벨기에인 아버지와 프랑스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비 슬라브적인 인물로 묘사한다”고 꼬집었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는 빨간 머리의 러시아 여배우 슐판 카마토바를 라라역으로 캐스팅했고 지바고 역에는 오마 샤리프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올레그 멘쉬코프를 기용했다. 멘쉬코프는 ‘러브 오브 시베리아’를 통해 한국 관객에도 익숙한 배우이다.
뉴욕타임스는 “스페인 라다하라 평원에서 올 로케된 린의 영화 현실은 가공일 뿐 실제 러시아 평원을 배경으로 제작되는 이 작품이 러시아 문학과 영화의 진수를 느끼게 해 줄 것”이라는 러시아 영화계의 반응을 전했다.
러시아 영화계의 이 같은 동향은 구 소련 붕괴 후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온 러시아가 최근 정치안정과 유가급등에 따른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국가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여러 시도 중 하나로 봐야 할 것 같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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