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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아이칸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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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아이칸의 역설

입력
2006.02.1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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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의 대표적 투자은행인 라자드는 지난 7일 343쪽에 달하는 방대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세계 최대 미디어그룹인 타임워너의 구조조정 방안을 담은 ‘라자드 리포트’다.

골자는 복합미디어 업체인 회사를 인터넷서비스(AOL) 콘텐츠(영화 및 TV) 출판 케이블방송 등 4개로 분리하고, 200억 달러의 자사주를 매입하며, 현 경영진을 전면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고서 출간을 눈치챈 타임워너는 맞대응책으로 6일 미리 출판사업부를 프랑스의 언론재벌 라가르데르에 5억3,750만 달러에 매각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라자드는 ‘기업 사냥꾼(Corporate Raider)’이란 악명을 가진 칼 아이칸(70)의 자문회사다. 작년 하반기 타임워너의 지분을 3.3% 매입한 아이칸은 줄곧 “덩치 큰 조직에 틀어 앉은 무능한 경영진만 갈아치우면 수년째 17달러대를 맴도는 주가를 25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공격해왔다.

주가에 불만을 가졌던 상당수 주주들이 아이칸의 주장에 동조할 조짐을 보이자 다급해진 타임워너측은 골드만삭스 등과 자문계약을 맺고 사우디의 왈리드 왕자를 비롯한 우호세력 포섭에 나서는 등 바짝 얼었다.

▦1980년대 미국 항공사 TWA 인수 등 때 보여준 집요함과 무자비함으로 인해 뉴욕 월가에서 ‘상어’라는 별명도 얻은 아이칸이 국내에서도 돌연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부터 KT&G 주식을 슬금슬금 사 모은 자신과 동조세력들로 지분 6.5%의 ‘아이칸 연합’을 구성, 이달 초 KT&G 경영참여를 전격 선언하더니 최근 사외이사 3인까지 추천하고 나선 까닭이다. 아이칸측은 또 KT&G에게 인삼공사 상장, 자사주 매입, 부동산 등 비핵심 자산 매각을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추가 지원세력을 확보하는 등 치밀한 작전을 진행 중이다.

▦졸지에 일격을 당한 KT&G는 그 동안의 실적과 선진적 지배구조를 내세워 경영권 방어를 자신하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타임워너 케이스를 아는 골드만삭스를 자문사로 선정하고 조만간 외국인 투자자를 위한 해외 기업설명회도 연다.

피 말리는 양측 싸움을 보는 시각은 복합적이지만, 민영화의 성공사례이자 지배구조 모범기업으로 꼽혀온 대표기업이 외국 투기자본의 약탈대상이 됐다는 개탄과 안전장치 마련 촉구가 주조다. 이른바 ‘KT&G의 역설’이다. 그러나 아이칸의 말은 늘 한 마디다. “기업가치에 비해 주식이 저평가돼 있다.” 진정한 해답은 여기서 찾는 게 옳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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