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정권 시절, 한국일보의 시사만평 ‘두꺼비’의 주인공은 아무도 없는 산마루에 올라가 소리를 내지르곤 했다. 언론 자유가 억눌린 현실을 그렇게 빗댄 것이다. 그 ‘산꼭대기의 언론 자유’는 내놓고 권력을 욕하기 어렵던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와 대리 만족을 주었다. 언론과 독자가 동병상련한다는 느낌이 작가가 마음껏 풍자하지 못한 부분까지 채웠다.
유럽과 이슬람권에 소용돌이를 일으킨 마호메트 풍자만평 논란 속에서 영국 신문의 논객이 ‘산꼭대기의 언론 자유’를 논한 것이 눈에 띄었다. 덴마크 신문의 만평 게재를 언론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옹호하는 논리를 향해, 그런 언론 자유는 산꼭대기에서 홀로 외칠 때나 허용된다고 반박한다. 언론은 세상의 평가와 양식을 존중하는 절제를 지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구의 편견 드러낸 마호메트 풍자
서구와 이슬람의 갈등에 빌미를 제공한 보수언론은 이슬람권이 서구적 언론 자유에 무지한 탓이라거나, 이란을 비롯한 강경국가가 과격시위를 부추긴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양심적 언론과 지식인들은 서구의 편견과 오만이 근본원인이라고 비판했다. 여론도 종교적 신념을 모독하는 행태를 비판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애초 언론 자유를 간섭할 수 없다던 서구 여러 나라가 언론의 자제를 촉구하고 나선 것도 이런 대세에 따른 것이다.
궁금한 것은 덴마크 최대 발행부수의 보수신문 율란츠 포스텐이 금기를 깨는 만평을 실은 의도다. 이 신문은 다문화 사회에서 마호메트를 코미디 소재로 삼지 못하고, 마호메트 삽화를 쓰지 않는 금기와 자기검열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러나 덴마크 출신으로 서유럽 정치와 이슬람 관계에 정통한 미국 브랜다이스 대학의 정치학자 위테 클라우젠은 이를 정치세력의 ‘문화 전쟁’과 연계된 것으로 본다.
독일 슈피겔 지 등이 인용한 글에서 그는 만평 게재 1주일 전 미켈센 덴마크 문화장관이 집권 자유당 대회에서 ‘다문화주의 이데올로기와의 전쟁’을 선언한 것에 주목했다.
미켈센은 특히 “이민 시대에 이슬람의 사고와 규범에 맞서려면 전통 가치의 회복이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발언 직후 자유당 지지기반이 주독자층인 율란츠 포스텐이 풍자만평을 실은 것은 문화적 순수성에 집착하는 덴마크 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정치세력의 의도에 영합 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만평 논란은 덴마크 사회에 반 이슬람 분위기를 조성했다. 언론은 만평 작가 살해위협과 폭력시위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이슬람 비난발언이 쏟아졌다. 이 즈음 덴마크 정부는 시민권 취득요건을 강화하고 이민자의 덴마크어 수업을 의무화하는 법 등을 차례로 내놓아 이민사회를 자극했다. ‘문화 전쟁’의 배경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마호메트 풍자만평은 ‘두꺼비’ 만평이 그랬듯이 덴마크 사회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서구 사회 전체의 양심적 여론에 밀려 산 위로 쫓겨가긴 했지만, 이슬람 이민 확산과 이질적 문화에 대한 깊은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보수언론이 언론 자유를 위한 연대를 표방하고 여기에 동조한 것은 산 아래에도 이슬람에 대한 질시가 널리 퍼져있음을 보여준다.
●공존 해치는 언론 자유는 관용 안돼
‘산꼭대기의 언론 자유’를 논한 영국 더 타임스의 사이먼 젠킨스는 “인류 문명은 공존을 위해 자유를 희생한 역사”라고 썼다. 마호메트 풍자만평과 같은 무분별한 언론 자유는 반문명적이라는 지적이다.
저명한 논평가 윌리엄 리스모그는 “자유는 이성과 법으로 절제해야 한다”는 존 로크의 말을 인용, 사회적 공존을 해치는 언론 자유까지 관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객관적 사태 분석에 도움될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거듭되는 언론 자유 논쟁에도 교훈으로 삼을 만 하다. 보수와 진보를 가림 없이 산꼭대기로 가야 할 언론 자유가 늘 만발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논설위원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