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끝난 후 가정법원에 협의이혼 신청이 두 배로 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상담소의 통계는 김장과 입시로 바쁜 11월에는 상담이 현저하게 줄고, 명절 후에는 상담창구가 엄청 붐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명절 이후 이혼 러시는 이러한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언론들은 ‘명절 증후군’을 조명하고, 이런저런 해결방안을 내 놓기도 하지만, 증후군을 넘어 명절 이후 가족갈등, 부부갈등이 이혼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좀 더 근본적으로 우리의 명절 문화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른바 명절 증후군의 원인으로 여성에게 집중되는 노동을 주요한 원인으로 보지만, 심층적으로 여성들의 박탈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명절=가족’이 곧 공식처럼 되어 있지만, 이때의 가족이란 결국 아들, 남성들의 혈연을 중심으로 한 모임이며, 여성들은 이 모임을 위한 노동력을 제공할 뿐인 것이다.
시집에서 차례 지내고, 손님들 맞이하느라 근처에 있는 친정에는 가 보지도 못했다는 하소연, 시집과 친정이 멀어서 명절 연휴에는 도저히 두 곳 다 방문할 수 없어 혼인한 지 몇십 년이 되도록 결국 친정에는 한 번도 못 갔다는 사연, 시집에서 차례 지내고 정리한 후 친정에 가려 했더니 시누이들이 온다며 ‘모든 가족이 모이는데 빠지면 안 된다’는 말씀에 결국 주저앉아 내내 뒤치다꺼리만 했다며 울분 삼키기 등 명절 이후 여성들이 모이면 비슷비슷한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다.
여기에 며느리 도리가 어떻다느니, 준비를 잘했니 못했니 하는 식의 품평이 오가고 우애와 화목에 대한 책임의 소재까지 며느리와 아내에게 물을 때, 이제 여성들은 더는 참지 않는 것이다.
과거에도 이런 사연들이 있었겠지만 이런 시간을 거쳐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어 가부장의 한 축을 이루면서 역사를 반복해 왔다. 하지만 핵가족이 일반적인 가족의 형태가 되고 더는 외아들이나 외동딸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게 되면서, 명절을 전후한 가족갈등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의 풍습 그대로 아내, 며느리인 여성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육체적이고 심리적인 희생을 강요해서는 곤란하다. 명절 풍습은 아름답지만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가족들의 이런저런 상황과 처지를 고려해 모두 즐거운 날이 되도록 서로 배려해야 한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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