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날카로운 칼날처럼 서있는 정신은 무엇이 불만인지 삐걱거린다. 수많은 밤들을 지새우면서 자아는 꺼질 듯한 촛불처럼 가녀리게 빛나고 있는 실낱 같은 정신을 부여잡고,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면서 종국에서 삐걱거리는 정신의 톱니로 괴로워하고 있는지 모른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관훈갤러리에서 21일까지 열리는 젊은 작가 6인의‘파괴적인 성격’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은 맨 처음 작가들이 써놓은 서문(序文)과 맞부닥치게 된다.
작품이 잉태되고 태어나기까지의 고통을 적은 듯, 서문은 곧 눈앞에 모습을 드러낼 작품들의 지향점을 암시하는 듯하다. 대체 전시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관훈갤러리 김미령 큐레이터는 “항상 창조를 해야 하는 작가들이 진정한 의미의 창조를 하려면 진지한 파괴를 해야 하고, 그 파괴적 행위는 고통이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 전시회를 통해 ‘도시의 고독’을 이야기하는 6명의 작가는, 개발과 발전으로 대변되는 도시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소외되고, 상처받고, 사라져가는 인간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다.
철거되는 시민아파트를 소재로 회화 작업을 해온 정재호(34)씨. 그는 언젠가 크레인과 불도저가 훑고 지나간 시민아파트 철거 현장에 우연히 들어갔다.
그곳에서 정씨는 바닥에 뒹굴고 있는 어느 여자의 사진과 물건을 보게 됐고, 그것들을 통해 전혀 알지 못하는 그 여자의 삶의 편린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았다.
“허물어져가는 건물은 이 도시에서 사라져야 하는 대상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 때 극 공간은 어느 한 사람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있던, 중요한 곳이었겠지요. 그런 생각에 공간을 통한 사람들의 기록을 다큐멘터리식으로 엮어봤습니다.”
그는 현대인들이 잊고사는, 아니 잊으려 하는 진솔한 삶의 온기를 이 낡은 아파트에서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붓의 속도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이민혁(34)씨의 회화는 정신없이 돌아가기만 하는 도시를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색감도 강렬하다.
이씨는 “처음에는 사람이 없는 도시풍경만 그리다가 지금은 급진적으로 발전하는 도시 속에사 멈춰버린 나, 또 그 안에서 소품처럼 살고 있는 인간군상들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이씨는 사람과 도시와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있는 듯하다.
김미령 큐레이터는 “도시는 발전하면서 자체적인 권력을 가지게 됐고, 그로 인해 정작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소외돼 버렸다”며 “이제 도시는 사람들이 살면서 즐길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휴식을 위해 떠나야만 하는 서글픈 곳이 됐다”고 했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들이 느끼는 도시속의 고독을 공유해봐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회에는 정재호, 이민혁씨 외에 방효진, 안성규, 오기영, 이여운씨가 참여했으며, 이들은 최근 작품 뿐만 아니라 처음 작업을 통해 완성했던 작품도 1~2점씩 가지고 나왔다.
(02)733-6469
조윤정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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