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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 훈련대원 30주기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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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 훈련대원 30주기 추모제

입력
2006.02.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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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2월16일 세 산 사나이가 77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 훈련 중 불의의 눈사태로 이곳에 젊음을 묻다.’

정월대보름의 새벽 달빛을 머리에 이고 무릎까지 차는 눈을 헤집으며 걷기 시작한 지 5시간. 설악산 비선대를 지나 산 정상 8부 능선에 다다르자 암벽에 붙은 조그마한 추모석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년을 훌쩍 넘긴 산 사나이들과 유족들이 눈을 다져 제단을 만들고 살아 생전에 세 사나이가 즐겨 마셨다는 머루주를 올렸다. 협곡을 타고 세차게 불어 오는 바람이 온몸을 흔들어댔지만 영정에 시선을 고정한 이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에베레스트 도전을 1년7개월 앞두고 설악산에서 훈련을 하던 중 눈사태로 목숨을 잃은 최수남(당시 36) 대장과 송준송(당시 30), 전재운(당시 26) 대원의 원혼을 달래는 30주기 추모식이 12일 오전 9시 설악산 좌골 사고 지점에서 열렸다. 추모식에는 산악인과 유족 등 50여명이 참석해 이들의 원혼을 달랬다. 특히 이 자리에는 박훈규(59), 이기용(57), 김호진(56)씨 등 당시 같은 훈련조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구조된 대원들이 30년 만에 처음으로 자리를 같이 했다. 마음과 몸의 상처가 깊어 좀처럼 설악산을 밟지 않다가 추모식에 참석했다는 김씨는 “너무 늦게 찾아와 미안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전 10시30분에는 설악산 좌골 훈련 베이스 캠프가 설치됐던 자리에서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또 한번의 추모식이 열렸다. 대한산악연맹이 사고현장까지 오르지 못할 정도로 나이가 든 대원들과 유족들을 배려해 마련한 행사다.

한국일보사와 대한산악연맹이 공동주관했던 77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에 참여한 산악인 40여명은 출발을 앞두고 설악산에서 마무리 훈련을 하던 도중 사고를 당했다. 6명이 한 조를 이뤄 등반하던 중 최 대장조가 사고를 당해 최 대장 등 3명이 숨지고 3명은 크게 다쳤다. 하지만 원정대는 슬픔을 딛고 일어서 이듬해인 77년 9월15일 낮 12시50분 기어이 해발 8,848㎙의 에베레스트 정상에 태극기를 꽂았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봉을 정복했던 고상돈씨는 설악산에서 숨진 동료 3명의 영정을 태극기와 함께 에베레스트 정상에 묻었다. 그러나 고씨도 79년 알래스카 맥킨리봉 등반을 마치고 하산 하던 중 빙벽에서 추락해 사망하고 말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고는 동료 산악인들의 기억에서 점차 사라졌다. 추모식도 언제부터인가 동료 선ㆍ후배들만의 ‘조촐한 모임’으로 변했다. 그러나 사고 30주년을 맞아 올해에는 여느 해에 비해 배 이상 많은 추모객이 모였다. 대한산악연맹은 이 여세를 몰아 내년 에베레스트 첫 등정 30주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일 계획이다. 또 한 영화사에서는 에베레스트 등정 30주년을 맞아 사망한 3명을 포함한 원정대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 중이다.

대한산악연맹 엄홍길(46) 이사는 “에베레스트 등정의 밑거름이 됐던 이들의 희생을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설악산=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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