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박정희 대통령 시절만 해도 대통령의 지방나들이에는 주로 전용열차가 이용됐다. 첫 대통령 전용열차는 1955년에 기존 객차를 개조한 ‘귀빈객차’로, 집무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이동청와대로도 불렸다.
지금은 경기 의왕시 철도박물관에 전시돼 우리 철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증언하고 있다. 일정한 궤도를 달려야 하는 전용열차는 경호 측면에서는 불리하다. 요즘 들어 대통령 전용열차의 활용이 미미한 것은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후 도로교통이 편리해지고 전용 헬기 이용이 늘어난 때문이지만 경호 상의 이유도 있을 것이다.
■ 한동안 일반인들에게 잊혀졌던 대통령 전용열차가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2002년 2월 한미정상의 경의선 도라산역 방문 때였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새로 제작된 전용열차 경복호를 타고 도라산역을 방문했다.
설계에서 제작에 이르기까지 국내 기술진의 힘으로 완성된 경복호는 최고시속 160㎞에 남북한 철도 연결 시 중국이나 러시아까지 달릴 수 있도록 제작됐다. 첨단 통신설비 등 대통령의 집무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고 경호·보안 문제상 특수 방탄처리 및 전파차단 장치가 설치돼 있다.
■ 4월 말쯤으로 예상되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방북 때 경복호를 타고 갈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DJ는 꽃피는 봄에 철도로 평양을 방문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해 왔다. 최근 평양을 다녀온 이철 철도공사 사장은 철도편을 이용한 DJ의 방북이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라고 밝혀 성사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남북 철도 간 전기·신호시스템이 다르고 선로 상태가 좋지 않다는 문제는 있지만 저속 주행과 수신호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도 DJ가 전직대통령 신분으로 대통령전용열차 이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 DJ의 철도방북이 성사된다면 그 자체로 상징적 의미가 크다. 2000년 6·15정상회담 이후 전반적인 남북관계 진전 속에 추진돼온 도로·철도 연결 사업에 매듭을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DJ가 간 철길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특별전용열차를 타고 서울을 방문하는 길이 돼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뤄질 DJ방북에 대해 한나라당은 ‘북풍’을 우려하지만 지나친 걱정이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발표됐을 때도 시비가 거셌으나 총선결과는 전혀 아니었다. 더욱이 이번 선거는 남북문제가 주요 이슈가 될 수 없는 지방선거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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