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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섹션-공부야 놀자/ 교육칼럼 - 마니또에게 띄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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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섹션-공부야 놀자/ 교육칼럼 - 마니또에게 띄우는 편지

입력
2006.02.1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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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학급 담임교사를 맡으며, 추억의 ‘마니또 게임’을 한 적이 있다. ‘마니또’는 이태리말로 비밀친구를 뜻하는데, 어원 그대로 친구 모르게 수호천사가 되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학창시절에 담임선생님께서 따뜻한 교우관계를 만들어 주셨던 마니또 게임을, 이제 ‘가르치는 자’가 되어 도전해 보고 싶었다.

제비뽑기를 통해서 마니또가 정해지고 난 후, 교실에서는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험을 못 본 친구에게 작은 격려의 쪽지가 몰래 도착하고, 좋은 일이 있는 친구의 책상 위에 꽃 한 송이가 올라와 있고, 배고픔의 강렬한 욕구를 가진 친구에게 반으로 나눈 빵이 전해지는 등 교실에서는 따뜻한 감정의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연말 성탄절 즈음에 학급 마무리잔치를 하며, 마니또를 밝히고 그에게 전하는 작은 편지와 선물을 준비하도록 했다. 편지만 전하는 방식으로 하려 했으나, 원래 중고등학생이라는 신분이 성탄선물을 안 받자니 섭섭하고 받자니 멋쩍고 쑥스러운 상황이라 1,000원 내에서 작은 선물을 준비하도록 했다.

요즘 소비자 물가지수에 민감한 아이들은 ‘1,000원 선물’이라는 작은 가격에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이기도 했으나, 작은 선물에 큰 마음을 담도록 숙제를 내 주었다. 마무리 잔치를 하는 날 ‘고백의 의자’를 마련하여 그곳에 자신의 마니또를 앉히고 선물을 주며 쪽지편지를 읽도록 했는데,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곤 했다.

지우개 두 개를 넣고 일 년 동안의 슬픈 기억을 모두 지우라는 메시지부터, 마스크를 넣고 한겨울 감기 조심하라는 배려의 글까지 다시보지 못할 훈훈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머리끈을 선물하며 교복과 두발에서 해방되는 날, 신체의 자유를 누리자는 재미있는 내용부터, 손수건으로 이별의 아픔을 전하는 글까지 담임교사의 마음에도 ‘감동’이라는 두 글자를 아로새겨 주었다.

이렇게 학급에서 아이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가르침인가?

세상을 배워나가는 가장 작은 공간인 교실에서, 사랑과 정을 배우는 것은 크나큰 인생교육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속에 감동의 불꽃을 지피는 것은 교사들 모두의 몫이고 과제라 할 수 있다. 혹자는 필자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서정적인 여학생이라서 가능하며, 남학생들의 거친 세계에 감동을 주기란 쉽지 않은 난제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감동을 주는 것은 그렇게 거창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박한 말부터 작은 행동으로도 학생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학기 초 첫 만남의 순간부터 아이들의 이름을 열심히 외워서 불러주는 일, 작은 성취를 이룬 아이에게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럽다고 격려하는 말, 칭찬을 통해 북돋는 말이 모두 감동을 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가출했다 돌아온 아이에게 여행을 다녀왔으니까 이제부터 다시 학교생활에 참여하자고 다스리는 말도, 분명 ‘울림’을 주는 말일 것이다.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에 추운 교실의 온풍기를 미리 켜주는 교사의 모습, 많은 책을 읽자며 작은 책갈피를 하나씩 나눠주는 선생님의 모습은 감동을 주는 작은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매스컴에서 졸업생 모두에게 상장을 나눠주는 대안학교 교사를 본 적이 있다. ‘욕쟁이상’, ‘활발상’, ‘유머상’ 등 이름을 만들기도 힘들었을 그 상을 통해, 학생들의 긍정적인 면을 칭찬하고 졸업의 기쁨을 나누는 것은 매우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진정 그 교사는 아이들에게 감동의 도가니탕을 몇 그릇씩 끓여주는 배려와 온정을 가진 ‘스승’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감동적인 가르침 속에 성장한 아이들의 마음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배려할 줄 아는 아름다운 꽃씨가 하나씩 숨겨져 있다. 슬픔과 고통에 대해 따뜻한 눈물 한 방울 흘릴 줄 아는 꽃봉오리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감동이 주는 교육의 결과는 실로 위대한 것이다.

글을 쓰며, 일 년 동안 학급아이들에게 ‘감동의 선물’을 해주었는지 고민해 보아도 막상 떠오르는 장면이 없다.

그래서 더욱 미안하고 부끄럽지만, 다음 주에 중학교를 졸업하는 학급아이들에게 고백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담임교사인 필자의 마니또는 바로 ‘너희들 모두’였다고…….

너희들 모두를 진정 사랑한다고. 이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도약하고 비상하는 과정 속에서도, 지금 같은 깨끗한 순수함과 타오르는 열정과 밝은 미소를 잃지 말라고. 먼 훗날 너희들의 마음에 자리 잡은 작은 감동이 다른 사람을 향해 크게 물결치기를 희망한다고.

이 작은 편지가, 내 소중한 마니또에게 주고 싶은 마지막 선물이다.

강용철<서울 경희여중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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