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이모(31ㆍ남)씨는 4일 서울 명동의 멀티플렉스 극장 ‘L시네마’로 영화 ‘홀리데이’를 보러 갔다가 즐거운 주말 기분을 망치고 말았다.
표 2매를 미리 예매해 갔는데 매표소 앞에서 ‘홀리데이 2,000원 할인권’을 뿌리는 게 아닌가. 4,000원을 손해 봤다며 극장측에 항의를 하니 ‘예매를 취소하고 새로 현장 구매를 하라’는 퉁명스런 대답만 돌아왔다.
하지만 미리 예매한 시간의 좌석은 이미 매진된 상태. 이씨는 “화가 치밀어 올라 그냥 집에 돌아왔다”며 “대기업이 운영하는 극장이 이래도 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L시네마는 홀리데이의 제작과 배급을 담당한 L쇼핑에서 운영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L쇼핑 관계자는 “경쟁 극장들의 ‘홀리데이 죽이기’ 때문에 흥행이 예상보다 저조했다”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 영화 홍보 차원에서 할인권을 돌렸다”고 밝혔다.
10여 개의 상영관을 모아놓은 멀티플렉스 극장에 대한 이용객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다.
롯데ㆍ동양ㆍCJ 등 대기업 계열사들이 운영하는 이들 극장은 1998년 첫 등장한 이후 7년 만에 전국에 650개의 상영관을 갖추고 전체 영화관람객의 61%를 점유할 만큼 급성장했다. 하지만 영화팬들로부터 ‘돈벌이에 급급해 고객은 안중에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단적인 예가 턱없이 부족한 화장실. 대부분의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대개 10개 안팎의 상영관을 갖추고 있다. 일일 유동인구가 1~3만 명, 영화 전후로 상영관을 드나드는 사람이 수천 명에 이르지만 화장실은 2~3개에 불과하다.
김모(29ㆍ여)씨는 “스크린을 하나라도 더 만들려다 보니 편의 공간은 형편없이 좁아진 것 같다”며 “여자 화장실의 경우 10~20미터씩 줄을 서야 하는 일이 흔하다”고 말했다.
관람 연령 제한도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중고생들이 교복을 입고 ‘연소자 관람불가’ 영화를 보는 경우도 잦다.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주말에는 한꺼번에 수천 명의 입장객이 몰려들기 때문에 일일이 신분 확인을 할 수가 없다”고 강변했다.
영화팬 조모(30)씨는 “최근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를 보러 갔는데 2시간 남짓한 상영시간 동안 미취학 아동들이 마구 떠들고 뛰어다녀 제대로 영화를 볼 수 없었다”며 “영화관측에 환불을 요구했지만 ‘애들이 본래 그런 거 아니냐’며 면박만 당했다”고 말했다.
영화관 매점에서 구입한 음식물만 반입을 허용하는가 하면 전산장애로 인한 좌석 겹치기(일명 ‘더블’)도 흔하다. 한 영화계 인사는 “대기업 멀티플렉스는 관객 동원력을 무기로 한국 영화계를 주무르고 있다”며 “관객도 영화인들도 모두 돈벌이에 눈이 먼 멀티플렉스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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