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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봉황의 꿈 다시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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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봉황의 꿈 다시 날다

입력
2006.02.1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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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악(禮樂) 정치를 표방했던 조선은 궁중잔치도 격식을 갖춰 아름답고 장중하게 치렀다. 그런 자리에서 거행되던 의식 가운데 ‘봉래의’(鳳來儀)가 있다. ‘봉황이 날아옴을 기뻐하는 의식’이라는 뜻이다. 봉황은 태평성대에 나타난다는 상상의 길조이니, ‘봉래의’는 국태민안을 빌던 마음의 표현이다.

왕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 것으로 시작해 신하들이 절을 올리고, 세 차례 술잔을 올리고 다 함께 어울려 즐기다 파하기까지 모든 과정이 엄격한 법도에 따라 진행됐다. 또 각 절차마다 노래와 음악과 춤이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요샛말로 하자면 ‘왕실 프로덕션’의 ‘악가무 일체 종합 퍼포먼스’라 하겠다.

국립국악원이 ‘봉래의’를 재연한다. 고종 연간인 1902년 이후로 끊어진 것을 복원해 공연 양식으로 다듬어 11, 12일 예악당 무대에 올린다. 국립국악원이 최근 수년 간 해온 조선시대 궁중연례악 복원 작업의 일환이다. 국립국악원은 정조대왕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과, 왕실 사당인 종묘에서 제사를 올릴 때 거행하는 종묘제례악을 의식과 음식까지 갖춰 무대 공연으로 선보인 바 있다.

이번 재연은 조선 전기 ‘악학궤범’(1493)과 조선 후기 ‘정재무도홀기’(1893)의 기록을 바탕으로 했다. ‘봉래의’에서 불리는 노래는 ‘용비어천가’다. 조선의 창업을 찬양하고 나라의 융성을 비는 이 시를 ‘여민락’ ‘치화평’ ‘취풍형’이라는 관현악곡에 얹고, 정재(궁중무용)로 구성한 것이 ‘봉래의’다.

눈여겨 볼 것은 여러 악기들이 등장하는 회무(回舞)다. 월금ㆍ당비파ㆍ향비파ㆍ향피리ㆍ대금ㆍ장고가 둥근 대형을 이루는데, 궁중무로는 처음 선보이는 특이한 형식이다. 또 월금과 비파는 그동안 거의 연주되지 않던 것이다. 이번에는 직접 연주하며 춤을 춘다.

아쉽게도 음악은 온전한 복원을 하지 못했다. ‘치화평’과 ‘취풍형’의 음악이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편경과 편종 악보만 남아있어 전체 악기 편성이나 주선율의 전모를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소편성 관현악 반주에 시조를 얹어 부르는 ‘가곡’으로 대신 한다. 이는 조선 후기 ‘봉래의’ 음악으로 가곡을 썼다는 옛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봉래의’는 세종대왕 시절 만들어졌다. 그러나 워낙 규모가 크고 관념성이 짙은 탓인지 조선 후기 들어서는 거의 연행되지 않았다.

인조 8년(1630) 대비를 위한 진연(進宴)에서 거행됐고, 그로부터 약 270년이 흐른 뒤인 고종 연간에 세 차례, 1901년 고종이 신하들을 위해 베푼 잔치와 고종의 50세 생일 잔치에서, 그리고 이듬해에 한 번 더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인조 때는 병자호란으로 짓밟힌 나라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상징적 몸짓이었고, 고종 대의 연행 또한 기울대로 기운 국운을 다시 일으키려는 의지의 선언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망했고, ‘봉래의’는 잊혀졌다. 그 후 104년 만에 무대 공연으로 부활한 ‘봉래의’는 봉황이 날아오기를 기다리는 오늘의 소망을 담고 있다. 공연시각 오후 5시. (02)580-3300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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