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의 참패 뒤 청에 끌려간 조선 부녀자는 5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사대부가의 부인이나 딸도 많았다. 대개는 현지에서 노예와 같은 생을 마쳤거니와,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이른바 환향녀(還鄕女)들은 “필시 몸을 더럽혔을 것”이라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는 등 수모를 받았다.
보다 못한 임금 인조가 ‘전쟁에 따른 불가피한 상황’임을 들어, 지정한 개울(홍제천)에서 몸을 씻으면 과거를 묻지 않는다는 고육책까지 마련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시와 냉대를 견디지 못하고 목을 매거나 비참한 삶을 이어가야 했다.
▦ 예전 미 알래스카의 내륙 오지에서 뜻밖에 중년의 한국여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한 여름 쾌적한 기후의 알래스카 남단 도시들과는 달리 일년 내내 눈과 빙하에 뒤덮여 있는 춥고 황량한 그 곳에서 여인은 송유시설 관리기지의 교대 근무자들을 상대로 작은 식당을 운영하면서 홀로 살고 있었다.
한국에서 만난 미군병사와 결혼해 미 본토에 가정을 꾸렸다가 이혼을 당하고, 이후 동포사회에서도 제대로 어울리지 못해 이리저리 전전하던 끝에 결국 그 곳까지 흘러 들어왔다고 했다. 한많은 사연을 풀어내며 여인은 자주 목이 메었다.
▦ 미국 프로풋볼 스타 하인스 워드 모자에 대한 열광이 도무지 식을 줄을 모른다. ‘자랑스러운 한국인’ ‘진짜 한국인’에다, ‘한국인의 혼으로 뛰었다’ ‘한국을 위해 이기고 싶었다’(정말 그가 이렇게 말했는지는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는 따위의 동원 가능한 온갖 표현이 연일 언론과 인터넷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어머니 김영희씨는 거의 신사임당 반열의 ‘한국의 대표 어머니’로 치켜 세워졌다. 정부차원의 예우가 검토되고, 기업들은 그들 모자를 잡기 위한 경쟁에 돌입했다. 4월 방한 때는 어떤 극상의 대우가 펼쳐질지 자못 궁금하다.
▦ 그러나 우리에게 열광할 자격이 있을까. 혼혈인은 차치하고라도, 과거 못난 나라가 보호해 주지 못한 우리네 누나 언니들에게 보냈던 경멸과 조소를 생각해 보라. 몇 년 전 한국에 온 김씨에게 누군가 침을 뱉었다고 했다. 아들을 보고 지레 짐작해 저지른 행패였을 것이다.
재미동포들도 크게 다를 바 없어 오죽하면 김씨가 아들에게 “한국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했을까. 우리는 그들의 영광을 나눌 만한 일을 한 것이 없다. 가슴에 숱하게 못만 박았을 뿐이다. 지금 느껴야 할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아니라 부끄러움이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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