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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그녀의 봄'… 통일 조국, 그곳에도 출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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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그녀의 봄'… 통일 조국, 그곳에도 출구는

입력
2006.02.1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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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란 무엇일까. 파임 커뮤니케이션즈의 연극 ‘그녀의 봄’은 악몽쪽을 택했다. 남북이 통일 시범지구로 만든 어느 항구 도시의 화려한 어둠에 짓눌린 디스토피아로 객석을 몰고간다. 어두운 미로 한가운데로 관객을 내던진다.

연극이 1시간 40분 내내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통일 이후의 상황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징후적으로 표출되는 몇몇 문제점을 통일이라는 상황에 이입시켰다는 표현이 더 그럴싸해 보인다. 카지노, 러시안 룰렛, 동성애 등 한국의 문화 코드로 자리잡은 상황이 남과 북의 아웃사이더들을 통해 어떻게 나타날 것지에 대한 가상의 보고서인 셈이다.

복잡한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한 연출과 제작진의 땀이 배어있는 무대다. 도박판으로 쓰이는 테이블과 침대 등 두 개의 소품만 있는 무대지만 제작진의 아이디어 덕에 상황에 맞게 수시로 변신한다. 테이블 표면 절반을 뒤집으면 신디사이저가 드러나고, 침대는 간단한 조작에 의해 소파로 거듭나는 식이다.

몽환적이면서도 기괴한 분위기의 앰비언트 뮤직을 적절히 배치한 선택도 돋보인다. 어어부 밴드의 재주꾼 장영규가 지은 3곡의 테마 음악은 공연 틈틈이 변주돼, 긴박감과 허무감을 더한다. 우리는 지금 못된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기라도 하듯.

귀기 어린 배우들의 힘은 무서울 정도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그들은 객석을 압도한다. 능란한 함경도 사투리, 총끝에서 번득이는 살의의 눈빛 등에 객석은 허튼 생각을 할 틈이 없다. 잘 훈련된 배우가 뿜어내는 존재감과 그들이 빚어내는 앙상블의 힘은 연극 무대만이 줄 수 있는 은총이다. 예를 들어 카지노에 붙어살고 있는 남과 북의 청년이 동성애에 빠져 사랑을 나누는 모습. 그 농밀한 장면은 현재 한국에서 동성애에 관한 허용도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체감케 하는 대목이다.

첫 날인 8일 만원 사례의 열기속에서 공연을 지켜 본 어느 중견 연극인은 “동성애, 자본, 조폭 등 소재는 다양하지만 집중도가 떨어져, 아직 정리가 덜 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통일 문제를 중앙에 배치해 두면서, 현재 한국인들의 어두운 상상력과 긴밀히 조응시킨 이 무대에 대한 관심의 열기는 쉬 사그러들지 않을 것같다. 28일까지 동숭아트센터소극장.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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