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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동북아 중심을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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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동북아 중심을 꿈꾸는가?

입력
2006.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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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생각해보자. 한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가까운 역사에 대해 통속 드라마가 전해주는 것 이상으로 아는 바가 별로 없는 현실을. 전에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떤 가치관과 생각을 가졌었는지에 대해 무지한 현실을. 그리고 아직도 혼령으로 떠돌고 있을지 모를 조상들이 읊조렸던 시와 가락을 유행가 가사만큼도 중히 여기지 않는 현실을.

자신에 대해 잘 모르니, 다른 국가들에 대해서는 더욱 무지한 채 좋고 싫음의 감정만을 가지고 있는 현실을. 이 현실이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하는 나의 현실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언제부터인가 ‘동북아 중심 국가 건설’이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떠돌고 있다.

●더 개방적이고 유연해져야

불행한 근대 역사로 얽힌 동북아 세 나라 중에서 왜 한국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지형적으로 중간에 있다고 해서 중심 국가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의욕만 앞세운 허구라는 비판도 있고 충분한 개연성을 가진 목표라는 주장도 있다. 어떤 경우이건, 금융, 통신, 정보, 물류, 산업, 항만, 항공 부문에서 동북아 지역의 중심 역할을 하는 국가로 서겠다는 야심찬 설계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것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중국이나 일본에 접근하기 위해서도 한국을 경유하는 것이 더 편리하고 이익이 되도록 정치, 경제, 문화의 구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공항, 항만, 신도시 건설과 같은 기반 시설 확충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는 민주화의 수준을 현격히 높이고 다원적 가치를 수용하는 일을 포함하며 성차별, 인종차별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차별을 타파하는 일을 포함한다. 사회의 신뢰성과 합리성을 높이고 상상력의 확장에 기반한 공감 능력을 높이는 일도 포함한다.

이러한 일들은 무엇보다도 넓고 깊은 지식과 문화 기반을 요구한다. 동북아 삼국은 공통의 문화적 기반을 지닌다고 말해지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매우 복잡하다.

비근한 예로 삼국의 학자들이 모여 회의를 할 때 언어 문제가 우선적 장애가 된다. 얼마 전 대만 포함 4 개국 학자들이 참가한 학회에서 시도되었던 동시통역의 어려움은 우리가 얼마나 가깝고도 먼 사람들인지를 내게 확인시켜 주었다. 의사소통과 이해의 어려움은 한자 문화권이라는 말이 지니는 공허함을 일깨워준다.

동북아 중심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중국과 일본에 관한 인문 사회과학적 지식의 체계가 탄탄해야 한다. 중국이 스스로에 대해 아는 것보다도 더 객관적으로 중국을 잘 알고 있어야 하며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과 한국에 관해, 나아가 아시아에 관해 종합적인 지식의 체계를 구축해 놓아야 ‘중심’이라는 말을 감히 쓸 수가 있을 것이다. 미국이 세계 중심 국가가 되기 위해 어떠한 지식의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고 험난하다.

●중국과 일본 얼마나 아는지…

한 문화에 실질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언어를 습득하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중국어와 일본어 모두를 잘 이해하고 구사하도록 하는 일은 동북아 중심 국가를 지향하는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하는 중요한 과제이다.

유럽 공동체가 잘 작동될 수 있는 배경에는 유럽인의 언어적 유연성이 놓여 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좁은 한국을 벗어나 세계를 향해 가기 위해서는 다중화된 언어 능력을 지니는 것이 필요하고 자신과 주변국, 나아가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김혜숙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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