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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1,000만 돌파/ 흥행키워드 '팩션 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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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1,000만 돌파/ 흥행키워드 '팩션 사극'

입력
2006.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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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06년, 청와대.

꽃미남 배우로 인기 절정에 오른 탤런트 공모씨가 청와대로 불려온다. 양성애 성향이 있는 대통령이 브라운관에 나온 공씨의 고운 모습에 반해 사람을 넣어 공씨를 은밀히 불러들인 것이다. 영부인은 질투에 휩싸여 공씨의 연기 인생을 끝장내려는 모략을 짠다. 공씨와 오랫 동안 연기 호흡을 맞춰온 같은 기획사의 연기파 배우 장모씨는 공씨를 사랑한 나머지 비열한 정치권력의 희생양이 된다.

이 때, 이런 줄거리의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아니, 이게 뭡니까?"

사극의 르네상스 이끈 '팩션'

영화 '왕의 남자'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이런 줄거리에서 보듯, 이 영화의 장르가 사극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관객 1,000만명 돌파의 의미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사극은 영화, 드라마, 소설 가릴 것 없이 모든 서사장르에서 낡고 고루한 분야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명품 사극'을 표방하며 사극도 현대물 이상으로 세련되고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스캔들'(2003) 이후 '황산벌'(2003), '혈의 누'(2005), '무영검'(2005)과 개봉을 앞둔 '음란서생'에 이르기 까지 극장가엔 사극영화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TV 드라마에서는 '대장금'(2003)과 '궁'(2006)이, 소설에서는 김 훈의 '칼의 노래'(2001), 전경린의 '황진이'(2004), 김별아의 '미실'(2005) 등이 역사물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이들 역사물은 실록 위주의 왕조사나 궁중암투, 위인이나 영웅의 일대기를 재현하는 데 그쳤던 기존 사극과는 판연히 다르다. 장르도 코미디, 멜로, 스릴러 등으로 다채로워졌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이들 모두 '팩션'(faction)이라는 점이다. 팩션은 사실을 뜻하는 '팩트'(fact)와 허구라는 의미의 '픽션'(fiction)을 합친 조어로,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현실로 창조된 작품을 말한다.

현재도 '미실', 북한작가 홍석중 원작의 '황진이', 명성황후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불꽃처럼 나비처럼' 등의 영화가 상상력의 유희를 통해 역사의 비어있는 여백을 새로 쓰고 있다.

왜 '팩션 사극'인가

역사와 상상력의 '이종교배'를 통해 현실을 재창조하는 팩션 사극이 붐을 이루게 된 데는 생활이나 풍속 등 주변부의 한 '부분'을 통해 역사 '전체'를 조망하는 미시사의 도입이 중요한 토대가 됐다. 왕과 위인들만의 시공간이었던 역사에 미시사가 도입되면서 현재의 일상을 역사 속에 투영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씨는 "요즘 사극영화가 관객들에게 먹히는 것은 역사 속 인물을 동시대인처럼 재창조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대를 무대로 했을 때 설득력이 떨어지거나 표현의 한계에 부닥칠 수 있는 내용을 역사 공간에서는 제약 없이 펼칠 수 있다는 것도 사극의 장점이다. 직정(直情)적으로 토로하기엔 너무 남루해진 사랑, 질투, 연민과 같은 '왕의 남자'의 주제들도 사극이라는 장르 에서는 자연스럽게 용해됐다. 대중문화 평론가 강명석씨는 "목숨 건 사랑을 현대물로 그릴 경우 '신파 멜로' 밖에 안되지만 그 공간이 과거가 되면 이런 판타지도 리얼리티를 갖게 된다"며 "역사는, 상투적이라고 여겨지는 고전적 가치의 정수를 재현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화려한 의상과 소품, 진기한 볼거리 등도 시각적 즐거움과 함께 호기심을 자극하며 이국주의에 가까운 '낯섦'의 쾌락을 준다. '왕의 남자'에서는 광대들의 놀이판, '대장금'에서는 다양한 궁중음식이 관객과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영화 '스캔들'과 '음란서생'도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만든 휘황찬란한 의상으로 한복은 촌스럽다는 고정관념을 전복하며 고전 의복의 '신세계'를 만들어냈다.

이제 역사는 더 이상 고서 속에 박제된 옛날이 아니라 '창조적 고증'을 통해 이 시대를 변주하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자리잡았다.

박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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