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9일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종합 감사결과는 과시ㆍ선심행정, 상식 밖의 월권, 도덕적 해이를 망라한 지자체 비리의 백과사전에 다름 아니었다. 갈수록 지자체의 역할이 확대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번 감사결과는 지자체에 대한 국민 감시를 더욱 강화해야 하는 당위성을 웅변해주고 있다.
개발정보 활용, 횡령 등 도덕적 해이
경기 양주시는 옥정지구를 택지로 개발하기로 하고, 2004년 7월 주민 공고를 했다. 이미 개발 소문이 퍼졌고 공고 두 달 전인 5월부터 보상비를 높여 받기 위한 토지 소유자들의 개발 신청이 폭주했다. 이에 건교부는 여러 차례 개발 허가를 내주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양주시는 이를 묵살하고 같은 해 10월까지 토지소유자 406명에게 건물 신ㆍ증축 등 506건의 개발을 허가, 결국 추가 보상비를 2,188억원이나 지급했다. 이 과정에서 양주시 전ㆍ현직 공무원 5명도 같은 수법으로 92억원의 보상금을 챙겼다. 또 다른 5명의 공무원은 양주시에 위장 전입해 땅을 사 16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전통적 비리인 횡령도 없어지지 않았다. 전남 구례군의 한 7급 공무원은 군청의 인감도장을 훔쳐 자신의 가족을 지급대상으로 한 지급명세서를 만드는 수법으로 138회에 걸쳐 총 3억 2,000만원을 빼돌렸다. 경남 통영군의 한 공무원은 유흥주점을 오가며 848만원을 관용신용카드로 결재해 문제가 됐다.
경기 의정부시는 2003~2005년 공무원 16명과 그 배우자들의 해외여행 경비를 포상금 예산에서 지원하는 등 총 34개 단체에서 관광성 여행 경비로 72억원을 부당집행 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임충빈 양주 시장 등 관련 공무원 9명을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요청 하는 한편 횡령 등에 연루된 46명의 공무원은 파면 등 중징계를 하도록 했다.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예산낭비
예산 낭비는 주로 지방사업의 무분별한 추진에서 발생했다. 현행법상 불가능하거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무작정 사업에 착수하는 바람에 165개 사업이 중단되거나 취소됐다. 이로 인해 무려 4,209억원의 예산이 낭비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성동구는 복지관 건립을 위해 61억원을 주고 부지를 매입했으나 이 부지는 건축허가제한구역으로 지정돼 공사가 불가능한 곳이었다. 광주광역시는 영상문화시설 설치 및 학생회관 이전을 위한 부지매입과 조성공사 등에 237억원을 투입했다가 공간부족과 추가재원 마련 실패로 이 돈을 모두 날릴 위기에 처했다. 전주시는 생활체육공원을 조성하면서 사업계획을 허위로 보고했으나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결국 사업을 중단해야 했다.
감사원은 중복투자 및 무리한 사업추진으로 예산을 낭비한 전주시장, 서울 마포구청장 등에 주의를 주고 관계자 27명에 대해 징계 등 엄중 문책하도록 했다.
선심, 과시성 사업 졸속 추진
경북 울릉군은 종합복지관 신축을 위한 특별교부세 8억원을 받아놓고 교부대상이 아닌 재향군인회에 회관 신축보조금으로 지원했다. 경기 안성시 등 8개 지자체는 통ㆍ이장 연합회, 친목체육대회 등 소모성 행사에 13억원을 보조하는 등 표 관리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대규모 청사는 일종의 붐이었다. 경기 용인시는 행자부의 허가면적(1만7,000평)보다 41.2%나 큰 2만4,000평 규모의 청사를 건립했다. 2000년 이후 건립된 25개 지방청사 가운데 21개가 행자부 심사면적보다 컸다. 경북 포항시는 시장실 면적을 기준 면적(40평)보다 3.1배나 큰 126평 규모로 만드는 등 단체장실 크기가 기준의 2배 이상인 청사가 11개나 됐다.
지자체의 축제도 문제였다. 2004년 각종 축제는 1,178개나 됐고 예산도 2,017억원이 쓰였다. 특히 강원 춘천시 등 12개 지자체는 축제를 전담하는 15개 비영리법인을 만들어 3,806억원을 출연했다. 감사원이 축제 496개를 표본조사한 결과 절반 가까이(226개)가 사업타당성 검토 없이 개최되고 있었다. 축제의 내용도 전국적으로 해맞이 축제 25개, 철쭉 13개, 수박 11개 등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줄 세우기 인사
기초단체장이 가장 많은 주의를 받은 것은 단연 인사비리였다. 서울 강남구는 법적 근거 없이 구청장이 주는 격려 점수가 실질적으로 승진을 좌우하게 만들어 근무성적평정, 인사위원회 기능을 유명무실하게 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구청에 근무하는 한 공무원이 하루에 받은 격려점수가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다른 직원이 일년간 받은 격려점수와 같은 경우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경기 파주시는 인사위원회 개최 전에 시장이 미리 승진대상자 이름 옆에 검은색 사인펜으로 체크하는 방법으로 승진자를 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전북 부안 군수는 담당 직원이 기분 나쁘게 말대답을 했다는 이유로 직위해제 처분을 내리는 등 황당한 인사를 하기도 했다.
또 경북 영덕군 등 39개 군의 경우 2년 동안 인구가 10만여명 감소했으나 같은 기간 공무원 수는 1,200명이 늘어나는 등 불필요하게 덩치만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토착세력과 유착한 부당 수의계약
부당한 수의계약 등 공사 관련 비리가 인사비리와 함께 대표적인 병폐였다. 전남 완도군은 수의계약 대상 업체에 대한 평가결과, 종합평점이 59.5점으로 평가기준점수(90점)에 크게 미달하자 평가기준 항목 중 하나인 ‘지난번 공사와의 공사중복 일수’ 점수를 97.7점으로 조작해 수의계약을 맺었다.
부산광역시의 경우 중소유통공동도매 물류센터 부지를 임차하는 과정에서 계약 담당자가 자신의 형수에게 미리 부지를 헐값에 사두게 한 뒤 부산시가 18억원을 주고 다시 임대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처럼 수의계약이 문제가 많은데도 2004년 이후 체결된 1,000만원 이상 공사계약 가운데 수의계약이 76%를 차지했다.
감사원은 이 밖에도 사업 인허가를 빌미로 사업자에게 공공시설 건설을 떠넘기거나 가산금, 분담금을 부과하고 각종 행사비 협찬 등 기부금을 강요하는 등 민원을 초래한 경우에도 시정을 권고하고 방지방안을 마련토록 했다.
신재연 기자 poet333@hk.co.kr
■ 청계천 사업 감사 대선 판세 바꿔놓을까
청계천 복원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11월 감사방침은 의도의 순수성 여부와 상관 없이 정치적 파장을 몰고 올 개연성이 크다. 청계천 사업이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명박 서울시장의 최대 치적으로 꼽히고 있고, 이 시장의 최근 지지율 상승세 또한 ‘청계천 효과’에 힘 입은 바 크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감사는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감사 결과 사업에 특별한 하자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별 문제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이 시장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욱이 그 같은 감사결과가 내년 중 발표된다면 이 시장의 정치적 입지와 대선 판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감사기간이나 결과 발표 시점 등이 아직 유동적인 것도 이 시장의 입장에선 불안한 대목이다.
물론 감사원은 이런 시각을 철저히 부인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지자체 감사에서 청계천 사업도 함께 감사하려고 했으나,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감사를 미뤘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11월 광역자치단체 대형사업 감사 대상에 청계천 사업을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왜 하필 11월이냐에 대한 의구심은 남는다. 11월은 여야 내부의 대선 레이스가 한창 불을 뿜을 시점이고, 2007년으로 넘어가면 후보 윤곽이 서서히 잡힐 가능성이 높다. 이런 와중에 발표될 감사결과는 대단한 폭발력을 가질 수 있다.
감사원은 청계천 사업 감사에서 시공업체 선정의 타당성, 계약의 이행여부, 문화재 이전 대책과 교통영향 평가 시행여부, 설계 변경 후 안전성 확보 여부 등 모든 사업 과정에 대해 감사를 벌일 방침이다. 아울러 사업 감사가 끝나는 대로 청계천 인근의 부동산 재개발사업 전반에 대한 감사에 착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편 감사원은 9일 전국 250개 지자체 감사 결과 서울시가 청계천사업추진본부 내 공사관련 3개의 팀 가운데 1개 팀을 임시기구로 분리해 담당관(과장급) 보직을 만들어주는 등 91개의 정규기구 외 한시기구 21개, 임시기구 20개를 두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개선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감사원 관계자는 “관리직 공무원에게 보직을 만들어주기 위한 전형적인 위인설관(爲人設官)의 경우”라고 설명했다.
신재연 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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