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치료를 위해 항생제가 과용 처방되고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상식’ 이었다. 하지만 어느 병원이 얼마나 자주 처방 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공개한 것은 9일 복지부의 발표가 처음이다.
이번 조치로 의료 시장에는 엄청난 파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의료 소비자인 국민은 베일에 가려져있던 항생제 처방률이 공개되면서 병ㆍ의원을 나름대로 평가, ‘골라서’ 갈수 있게 됐다. 의료계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이 ‘비밀’ 을 알게 되는 바람에 앞으로는 맘 편히 항생제를 통한 진료를 하기 힘들게 됐다.
의원들 상대적으로 처방률 높아
2005년 3분기 감기 환자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 현황에 따르면 종합병원보다 동네 병원(일반 의원)의 남용이 훨씬 심각했다. 동네 병원의 항생제 처방률은 61.79%로 종합전문병원(대학병원) 45.01%, 종합병원 48.15%, 병원 52.21%보다 크게 높았다.
특히 부산 연제구의 한 이비인후과 의원은 처방률이 무려 99.25%나 됐다. 100명의 환자 중 99명에게 항생제를 처방한 셈인데, 단순 감기 환자뿐 아니라 축농증 환자 등이 다수 찾았다 해도 너무 높은 수치다.
한 내과전문의는 “일단 대부분의 감기 환자가 1차 의료기관인 동네 의원들을 찾고 있고, 많은 환자들이 항생제를 처방하면 치료 효과가 빠르다고 생각하고 있어 의원들이 살아 남기 위해 경쟁적으로 항생제 처방률을 올렸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각종 의료정보 공개 물꼬 열었다
이번 실태 공개는 표면적으로는 최근 법원이 참여연대가 정부를 상대로 병ㆍ의원들의 항생제 처방률을 공개하라고 낸 소송에 대해 원고승소 판결을 내림에 따라 이뤄진 것.
복지부는 법원 판결에 따라 2002년~2004년 처방률 상ㆍ하위 4% 병ㆍ의원의 명단만을 공개하려 했으나 보다 믿을만한 자료를 국민에게 제공한다는 의미로 2005년 3분기 자료를 추가로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이상용 보건복지부 보험연금정책본부장은 “의료정보를 의료계가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은 국민의 뜻”이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자료를 공개할 계획이며 감기 환자에 대한 의료기관의 항생제 처방률은 매 분기마다 정기적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병원의 주사제 사용률이나 제왕절개 시술 빈도도 점차 공개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를 통해 선진적인 여러 처방 형태에 대한 연구도 한층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정부가 비상식적으로 항생제를 많이 사용한 의료기관에 대한 제재는 계획하고 있지 않아 항생제 사용률을 떨어뜨리려는 의도를 만족할 만큼 달성하기에는 이번 조치가 다소 미흡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공개에서 처방률 상위에 오른 의료기관은 정부 차원의 제재가 없더라도 충분히 시장에서 불이익을 당할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정부의 의료정보 공개로 의료 소비자들이 병원을 선택할 때 자칫 잘못된 편견을 가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의원들 중 90%이상 처방률을 보인 곳은 분명 시정되어야 하지만 복잡한 진료 상황 등에 대한 이해 없이 항생제 처방만을 기준으로 소비자들이 병ㆍ의원을 고르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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