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불립니다.
사실 감기와 우울증은 가장 흔한 질병이라는 것 외에도 여러 면에서 서로 닮아 있습니다. 평생 한번도 걸려본 적 없다는 사람도 있고, 연례 행사로 치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독감이 전염되듯이 우울증이나 자살도 전염된다고도 합니다. 어찌 보면 온몸에 이상 신호가 찾아오고 힘이 빠지며, 마음이 가라앉고 머리가 멍해지는 증상까지 비슷합니다. 적절한 치료를 하면 대부분 잘 낫지만, 설마 하며 가볍게 여기다가는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점도 같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둘 모두 춥고 건조한 겨울철에 잘 걸린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계절을 타는 우울증은 겨울철을 전후해서 많이 나타납니다. 대략 추석이 지나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뒤로부터 겨울을 지나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른 봄까지입니다.
특히 자살의 위험성은 우울증의 증상이 절정을 넘어선 시기, 즉 봄철에 가까울수록 커집니다. 제가 기억하는 지난 몇 년간 국내 유명인들이 우울증으로 고통 받다가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이 대부분 이 계절입니다. 요즘 들어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신병 비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보도를 더 자주 접하게 되는 것도 제 눈에는 계절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달리 표현해보면, 유명인의 자살 후에 동조 자살이 급증하는 것에는 베르테르(Werther) 효과뿐 아니라 날씨(Weather) 효과도 있다는 것입니다. 서민들이 자기 자신 뿐 아니라 식구들까지 데리고 세상을 떠나는 것은 비단 사회경제적인 어려움 때문만이 아니라 날씨가 추워지면서 마음도 추워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일조량과 관련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상세한 원인이 밝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과학적 이유야 어찌 됐건 이러한 사건들을 들여다볼 때마다 가족과 이웃이 미리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으면 비극을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습니다.
독감 주의보가 내려지면 독감 예방 접종을 실시하듯, 진료실에서는 겨울이 가까워 오면 우울증의 재발과 악화를 막기 위해 환자들의 상태를 면밀하게 살피게 됩니다. 증상 악화의 조짐이나 자살 사고 등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필요한 경우 입원 등의 적극적인 치료를 권하기도 합니다.
결국 진료실 안에서나 밖에서나 ‘죽음을 부르는 마음의 감기’로부터 회복시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전문적인 의료 기술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의 주의와 관심인 것입니다.
온 국민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우리나라가 ‘국가적 우울증’에 빠졌다는 외신의 진단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 성인의 35%가 자살을 생각해본 것으로 조사되었다는데, 이번 겨울과 봄에는 ‘우울증 주의보’가 내려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독감 주의보처럼 나라에서 발표할 일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이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과 이웃의 삶에, 그리고 마음에 더 따뜻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는 것 입니다.
성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 윤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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