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은 가톨릭이 정한 ‘세계 병자의 날’. 지난해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병고와 싸우는 환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1992년 제정했다.
서울보훈병원 성당 이상렬(48) 신부는 이날이 돌아올 때마다 감회에 젖는다. 환자 신자들을 대상으로 병원 사목을 전담한 지 3년 남짓. 그 동안 환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함께 슬퍼하고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뛰어다녔지만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고해성사 병자성사 성체성사를 이끌고 미사를 봉헌하는 등 이상렬 신부가 하는 일은 여느 사제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 다만 미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활동을 병실에서 주관하고, 환자와 대화하는 시간이 많을 뿐이다.
이상렬 신부처럼 병원사목을 하는 사제는 서울에만 18명. 하지만 서울보훈병원에는, 한국전쟁과 월남전 등에서 다쳐 수십 년 동안 입원한 장기 환자가 많고,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완치를 기약하기 어려워 사목 활동에도 더 많은 노력과 정성, 주의가 필요하다.
“전우가 여럿 있었는데, 왜 하필 나만 다쳤을까, 이 정도 치료했는데 왜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분노와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가 적지 않아요. 다른 사람을 기피하고요.”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졌기 때문인지 환자들의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그런 고통이 환자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고 다른 가족에게 그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아내는 남편 간병이나 돈벌이에 내몰리고, 자녀는 부모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가정 파괴도 적지 않다. 이런 문제를 모두 해결해줄 수는 없어도, 이상렬 신부는 그들 마음 속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것이야 말로 자신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육신의 질병은 의사가 치료하지만, 마음의 고통을 더는 것은 저의 몫이지요.”
이상렬 신부는 매주 화ㆍ목ㆍ토ㆍ일요일 주기적으로 병실을 방문하지만 이때가 아니어도 틈나는 대로 환자와 만나 함께 울고 함께 웃는다. 가끔은 천주교 신자가 아닌 환자와도 상담을 한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언제든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24시간 대기라고 봐야 한다.
이상렬 신부는 인근 둔촌동성당 보좌신부로 있던 95년 일주일에 한 두번 방문하면서 병원과 인연을 맺었다. 그러다 2002년 말부터는 아예 이곳 병원사목 일에만 전담하고 있다. 특별한 동기는 없다. 하지만 그 전에 나환자촌, 장애인촌, 교도소 등에서 사목 활동을 한 적이 있어 “하느님께서 나에게 특별히 어려운 사람을 잘 돌보라고 미리 준비시킨 것 같다”며 웃었다.
가톨릭 신앙적 차원에서 보자면 죽음이 끝은 아니다. 죽음은 인간이 지나야 하는 통과의례이며 또 다른 세상으로 가는 관문이다. 그렇게 보면 죽음은 그렇게 슬퍼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오랫 동안 함께 한 환자가 타계할 때는 ‘나의 기도가 부족했나’하는 자책감과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사람은 누구나 죽을 수 밖에 없으며 다음 세상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자신의 말을 듣고 환자가 편하게 죽음을 맞으면, 보람도 느껴진다.
이상렬 신부는 환자 뿐 아니라 그 가족을 껴안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11월 셋째 주 일요일 오후에 개최하는 사별 가족모임도 그 중 하나다. 가족, 특히 자식이나 배우자를 먼저 보내면 남아있는 사람도 상실감과 정신적 갈등이 큰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 위안을 주고 받자는 취지에서 마련했다.
힘들 때도 있지만 그 때마다 함께 하는 송문자(61) 수녀와 자원봉사자들이 큰 도움을 준다. 송문자 수녀는 “환자들이 신앙의 힘으로 마음의 짐을 조금씩 내려놓을 때 우리도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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