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사회공헌기금 출연과 더불어 내부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회장 일가가 8,000억원을 출연하고, 구조조정본부(옛 비서실) 규모를 축소하며,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수용하고, 금융계열사 의결권을 제한한 공정거래법 관계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과 정부를 상대로 한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소송 등을 취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헌법이 그 기본 원리로서 규정한 자유시장경제의 질서는 자신의 건강성을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자정력이 없는 한 언제든지 반자유주의적 관치경제의 도전을 받아 스스로 붕괴하는 취약성을 갖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 역시 당연히 정부가 져야 할 공적인 영역에 대한 책임을 기업이 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기업 스스로 자신의 생존의 터가 되는 시장을 지키기 위한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이번 삼성의 ‘사회’ 공헌기금은 그런 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사실 삼성이 이런 조치를 취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한 그 원인(遠因)은 거슬러 올라가자면 한국경제와 사회의 어두운 과거에서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X-파일은 기업이 정치적 보험료를 납부할 수밖에 없고 불법도청이 난무하는 어두운 정치상황의 산물인 것이다.
삼성의 소유경영구조라든지 국내 기업집단들의 계열사 간 출자구조는 산업화시대에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런 과거의 사실을 변화한 새로운 기준으로 평가함으로써 발생한 것이 삼성의 현안 문제였고 그래서 그것을 지금의 잣대로 해결해보겠다는 것이 이번 내부개혁 방안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만 삼성이 법적 시비를 떠나 사회정서를 고려해 정부를 상대로 하는 소송 건을 모두 취하한 것은 법치주의의 원칙에서 보면 아쉽다. 결국 삼성은 아무리 초일류기업이라 하더라도 조세징수권도, 법적강제권도 가지지 못하며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그룹의 경영구조가 흔들리면 그것은 내부 경영혼란뿐 아니라 투기자본의 기회주의적 행동으로 경영권이 항상 위협받게 되는 사인(私人)에 불과한 것이다.
기업을 있는 그대로 대우해줄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의 국가와 사회도 과거지향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기업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이번 삼성의 개혁안은 그 첫 손이라고 생각된다.
강경근<숭실대 법대 교수ㆍ헌법학>숭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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