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부터 이어진 극장가의 흥행 대전이 점점 막을 내리고 있다. 한달 여간의 치열한 전투가 끝난 극장가는 상대적으로 비수기인 2월을 맞아 ‘눈부신 하루’ ‘신성일의 행방불명’ 등 작지만 단단한 영화들을 잇따라 개봉한다.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45억원)에 한참 못미치는 예산으로 만들어진 ‘작은 영화’들이지만 흥행에 대한 포부는 여느 상업영화 못지않다. 개봉 극장수나 마케팅 비용 면에서 상업영화의 ‘새 발의 피’ 수준이지만, 작은 영화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생존법으로 냉혹한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다.
23일 개봉하는 ‘눈부신 하루’(감독 김성호 김종관 민동현)는 133분의 만만치 않은 상영시간을 자랑하지만 제작비는 고작 5,000만원, 개봉관 수는 단 두 곳, 마케팅비는 인터넷 배너 광고비 수준인 3,000만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베를린영화제에서 ‘베를리너 차이퉁 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 호평을 받은 ‘신성일의 행방불명’(감독 신재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제작비는 6,500만원으로 16일 개봉해 시네코아 등 3곳에서 상영할 예정이다.
10일 개봉하는 ‘달려라 장미’(감독 김응수)는 제작비가 5억원, 마케팅비가 4,000만원이어서 두 작품에 비하면 ‘대작’에 속한다. 그러나 개봉관수는 서울 낙원동 필름포럼과 지방 두 곳 등 세 곳 정도 밖에 잡히지 않은 상태다.
적게 섭취하고 적게 배설하면 된다지만 ‘작은 영화’가 시장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지난해 11월 개봉한 ‘다섯은 너무 많아’(감독 안슬기)가 2주 동안 불러모은 유료 관객은 3,200명. 순제작비가 6,000만원에 불과하고 한국독립영화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전국 의 일곱 군데에서 ‘대대적으로’ 개봉했으나 수지를 맞추지 못했다.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인식이 걸림돌이 됐고 무엇보다 배우나 감독의 인지도가 상업영화에 비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예산 영화에 맞는 마케팅 전략을 개발해 견고한 시장의 벽을 뚫으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눈부신 하루’와 ‘다섯은 너무 많아’를 배급하는 인디스토리는 ‘찾아가는 영화관’을 운영해 관객층을 넓힐 계획이다. 오갈 데가 마땅치 않은 네 사람의 기묘한 동거를 그린 ‘다섯은 너무 많아’는 영화 내용에 걸맞게 노숙자 공동체를 직접 찾아간다.
영화제 참가는 확실하게 입 소문을 통해 ‘작은 영화’를 알릴 수 있는 기회다. 인디스토리의 오류미씨는 “영화제에 오는 분들은 ‘작은 영화’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영화제에서 먼저 선을 보이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신성일의 행방불명’과 ‘다섯은 너무 많아’는 각각 부산영화제와 전주영화제를 통해 알려지면서 어렵사리 개봉으로 이어졌다.
9일 개봉하는 ‘썬데이서울’(감독 박성훈)은 영화제를 발판 삼아 저예산의 틀을 벗고 상업영화로 비상한 경우다. ‘썬데이 서울’은 제작비가 7억원이나 되는, 제법 규모가 있는 ‘작은 영화’다.
원래 30억원으로 기획된 영화였으나 투자자가 붙지 않아 저예산 영화가 됐다. 봉태규 이청아 등 배우 전원과 스태프가 무임금으로 촬영에 임해 제작비를 낮췄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관객들의 호평이 이어지면서 충무로의 주류 시네마서비스가 배급을 맡게 됐는데, 개봉관 수가 무려 150개에 달한다. 마케팅비는 제작비의 2배에 육박하는 13억원이 책정됐다. 천덕꾸러기 오리가 백조가 되어 날아오르는 셈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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