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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동성애…손 놓은 교육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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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동성애…손 놓은 교육현장

입력
2006.02.0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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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사 김모씨는 동성 커플이라는 아이들과 마주치는 일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잘 해보라”고 할 수도, “절대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나 각종 성교육자료를 뒤져봤지만 동성애 학생 교육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결국 눈 질끈 감고 아무 말 않기로 했다.

#2.동성애자인 유라(17ㆍ여ㆍ가명)는 얼마 전 상담실에 불려갔던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진다.

교사는 다짜고짜 누구와 사귀었는지, 그가 알고 지내는 동성애 친구들이 누구인지 댈 것을 종용했다.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처벌이 뒤따를 것이라는 협박도 뒤따랐다.

유라는 결국 알고 있는 사실을 말했지만 고자질을 했다는 자괴감과 언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날지 모른다는 근심에 하루하루가 힘겹다.

청소년 동성애를 대하는 교육 현장은 문제의 심각성은 인식하면서도 뾰족한 방법이 없어 손을 놓고 있다. 과거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 교사들은 충격을 받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상담 교사들간의 의견 편차도 크다. 아이들의 고민을 이해하면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 동성애를 마치 학교 폭력처럼 배척해야 할 것으로 여기는 시선도 있다.

전문가들은 교육 현장의 부실한 성교육 실태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진단한다. 지난해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내놓은 국감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시ㆍ도교육청들은 성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교원 연수를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실시하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니 직무 연수의 교양ㆍ선택 과정으로 운영되는 성교육 강좌에 동성애 등 성 소수자 관련 프로그램이 있을 리 만무하다.

경기 의정부시 C중 김모(27ㆍ여) 교사는 “시청각 자료만 달랑 보여주거나 전교생을 강당에 모아놓고 외부강사의 강연을 듣는 방식은 10년 전과 다름 없다”며 “이러니 동성애하면 아직도 에이즈를 먼저 떠올리거나 게이(남성 동성애자)와 트렌스젠더 같은 기본 개념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성교육 담당자들이 수두룩하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나이, 종교 등 교사별 편차 요인이 가세하면 객관적인 정보 전달은 더욱 어려워 진다.

이렇다 보니 정서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동성애를 생각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교육적인 보살핌을 받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2년 전 커밍아웃(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을 한 장모(18)군은 “주변 동성애자 커플 중에는 아웃팅(다른 사람에 의해 성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을 당하자 부모님끼리 서로 싸움까지 하고 강제로 학교를 그만두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설령 주위에 알려지지 않고 학교를 졸업하더라도 상급 학교에 진학해 적응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학업을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일한 방법이라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이성애자로 가장하는 것이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KSCRC)가 발간한 성적소수자 인권교육 프로그램의 설문조사에서 교사들은 동성애 교육의 어려움으로 성발달 과정에서의 악영향(21.3%)과 학교와의 마찰 및 학부모 항의(37.2%) 등을 꼽았다.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 교육을 펼치고 있는 정연희(48ㆍ여ㆍ한세전산고 교사)씨는 “많은 교사들이 동성애 교육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학생들의 질문에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지 못할 경우 예민한 시기에 자칫 혼란을 부추길까 두려워 한다”고 지적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중학교 3학년만 돼도 입시 체제로 돌입하는 상황에서 의무 교육이 아닌 권장 사항에 불과한 성교육에, 그것도 논란의 소지가 있는 동성애 문제에 일선 학교가 알아서 시간을 할애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 "상담센터 문 두드렸지만 '바꾸는 게 좋겠다'말 뿐"

“지금은 잠시 휴전 상태예요. 하지만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활달하게 말을 이어가던 현수(가명ㆍ18)가 1년 전 부모님께 커밍아웃 하던 날을 떠올리자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어머니는 거의 실신하실 지경이었죠. 두 달 동안은 꼼짝없이 집에만 틀어 박혀 있었어요.”수시로 있는 곳을 확인 받고 매일 귀가시간을 체크 당하는 감시 아닌 감시 생활이 이어졌다. 가출 할까 모진 마음도 먹었지만 가출 뒤 방황하며 살아가는 또래 동성애자들의 모습이 떠올라 이내 접었다.

현수는 어릴 때부터 여성적인 면이 많았다. 처음에는 스스로도 ‘남들과 조금 다르겠거니’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 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 들면서 혼란은 더해 만 갔다. 누구에게도 말 못할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 청소년상담센터의 문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동성애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바꾸는 것이 좋겠다.’돌아온 답변은 그 뿐이었다. 그 때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는 확신이 섰다. 중학교 2학년 겨울 그는 그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 들이기로 했다.

그 무렵 청소년 동성애자들을 위한 인터넷 카페에서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후로는 더 이상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는 성소수자 인권단체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동성애자의 권리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수는 그래도 다른 동성애자 친구들에 비해 행복한 편이다. “어머니와 대화를 많이 나눠요. 처음에는 절망하시던 어머니도 지금은 강요를 하지 않습니다. TV를 보다가도 동성애 관련 문제가 다뤄지면 스스럼 없이 의견을 교환하는 단계까지 왔으니까요.” 하지만 커밍아웃 이후 거의 말을 안 하는 아버지와 관계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한창 들떠 있을 시기이지만 그의 마음이 편치 만은 않다. “부모님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이해를 해주시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제 정체성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건 아니에요. ‘아들이 언젠가 이성애자로 돌아오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계신 것 같아요.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세월이 흐른다고 어찌할 문제가 아니잖아요?”

현수는 뮤지컬 배우를 꿈꾼다. “어린 시절 그토록 부끄럽게만 여겼던 내 안의 여성성이 이제는 배우로 성장하는 데 큰 빛을 발할 거라고 믿어요. 냉대와 편견에 맞서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모든 동성애자를 위해 제가 가진 모든 재능을 아낌없이 나눠드리고 싶습니다.”

김이삭기자

■ 대안은 없나

커밍아웃, 아웃팅 피해 여부와 관계 없이 학교는 동성애 문제 자체가 부각되는 것을 꺼린다. 소문이 나돈다는 사실만으로도 학교 이미지가 손상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부로 드러나지 않게 입 단속을 하며 자퇴를 유도하거나 전학을 시키는 등 사건 무마에만 급급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껏 한다는 것이 부모에게 통보하는 정도다.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는 “청소년 동성애자 규모가 좀처럼 드러나지 않은 것도 학교 현장에서 이처럼 철저하게 그 존재를 부정 당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 대표는 “교사들의 마음 한 구석에 있는, 다른 학생들이 비주류인 동성애자를 닮아갈까 우려하는 심리적 방어막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학교 내 청소년 동성애자들을 교육 대상에서 배제하지 않는 배려가 우선 과제라는 지적에 다름 아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성역할의 경직성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이성과 동성을 나누는 이분법적 교육이 오히려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다.

한국청소년상담연구소 이영선 선임상담원은 “청소년기의 동성에 대한 호감을 동성애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을 고민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선임상담원은 “교사들은 ‘동성애는 무엇이고 그래서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규범적 지침을 가르치지 말고 ‘정체성은 삶의 연속선상에서 스스로 알아가는 부분’이라는 식으로 정체성 탐색의 여지를 남겨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숙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중앙위원도 “청소년을 무조건 미성숙한 존재로 규정해 이성애만을 유일한 성 정체성으로 주입시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는 동성애 문제를 인권 교육의 한 분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채윤 대표는 “동성애자의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법 조항이나 학칙에 강제하는 것은 오히려 동성애에 대한 특혜로 비쳐질 수 있다. 성 정체성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라 기본권 차원의 문제이므로 ‘학교는 동성애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존중 받을 가치가 있음을 배우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힐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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