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세율을 올려야 한다거나 세목을 조정해야 할 필요가 생길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기사가 있다. 정부에서 자료를 제공한 이 기사는 한결같이 의사 누구, 변호사 누구가 탈세를 한 것을 적발해서 엄청난 추징금을 물렸다는 내용이다. 이와 아울러 전문직 종사자들의 소득을 투명하게 밝히는데 애쓰겠다는 정부 발표가 어김없이 이어진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기사가 매년 등장할 수 있는지, 한번 제대로 하면 그 다음부터는 시스템으로 굳어져야 하는데 어떻게 매년 엄청난 금액을 추징할 전문직을 새로 적발할 수 있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 아니라 너무도 속이 뻔히 보이는 일이다.
●소득공제 미끼 시민에 악역 맡겨
작년 처음으로 시행된 현금영수증 제도의 실적이 대단치 않다. 1999년부터 실시한 신용카드 소득공제제도 덕분에 그 해의 신용카드 사용액이 전년도보다 26.6%가 늘어난 105조 650 억원이나 되어 세금이 많이 걷혔다는 것을 자랑하던 정부가 현금영수증의 세원발굴 효과에 대해서는 잠잠하다. 국세청에 알아보니 작년도 현금영수증이 발급된 금액은 18조 6,000억원. 작년 신용카드 사용액(추계치) 192조원에 비하면 10%에도 못 미친다.
더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답답하다. 소비자들이 현금 영수증을 받는 게 힘드니까 이미 세원이 노출된 대형매장과 백화점 등에서 영수증을 끊은 것이 대부분이다.
평소에도 영수증 없이 거래하던 업체로부터는 여전히 영수증을 못 받고 있다. 그 대상은 재래시장 동네음식점 미장원부터 예식장 병원 변호사사무실까지 다양하다. 현금영수증으로 크게 새로운 세원을 발굴하기는 힘들게 됐다.
현금영수증이 무시당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업주와 소비자가 담합하거나("금액이 큰 것은 영수증 없이 현금으로 내면 많이 깎아준다") 업주가 버티면 소비자가 넘어갈 수 밖에 없다.
("현금영수증을 달라면 언짢은 표정을 짓거나 발급하는 방법을 모른다며 계속 시간을 끌면 민망해서 그냥 안 받고 만다." "재래시장에서는 현금영수증을 달라고 해도 안 준다.") 게다가 5,000원부터만 받을 수 있으니 소액을 많이 모아 크게 버는 업체들의 소득이 여전히 물 속에 잠겨있다.("동네 병원은 진료비가 보통 3,000원 내외인데 카드로 긁기도 그래서 현금 내고 오지만 하루에 몇 백명씩 진료하는 것 보면 장난이 아닌데." "라면집 떡볶이집도 애들 몰리는 것 보면 만만찮지만 건당 금액은 워낙 적으니까.")
무엇보다 현금영수증 제도가 의무화가 아니라서 업주가 거절하면 방법이 없다. 이 상황에서 소득공제를 미끼로 봉급생활자에게 현금영수증을 챙기도록 강요하는 것은 세금을 받아내기 위해 악역을 마다 않아야 하는 세리 역할을 평범한 시민들에게 떠넘긴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시민들에게 세금 감시라는 역할을 맡기려면 그를 위한 기반은 마련해주어야 한다. 현금영수증 발급을 의무화하거나 간이영수증도 현금영수증과 똑같은 효과를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절하는 업소에서도 간이영수증은 끊어주는데 이것은 사업자에게는 손실비용처리의 기준이 되면서 월급쟁이들에게는 소득공제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큰 모순이다.
사업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영수증은 월급쟁이들도 똑같이 소득공제의 근거로 쓸 수 있어야 한다. 간이영수증 자체가 사라져야 할 제도라고 원칙론을 들먹이고 싶다면 현금영수증을 1원부터 가능하게 제도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자영업자 세원발굴”만 되풀이
무엇보다 매년 정부가 세금 이야기만 나오면 달고 나오는 '지당하신 말씀', 즉 "고소득 전문직과 고소득 자영업자의 세원을 발굴하겠다"는 약속을 제발 한번이라도 지켜주기 바란다.
세무업무와는 무관한 사람도 한 다리만 건너면 누가 장사가 잘되는지 뻔히 아는 사회에서 세금징수기관만 '도둑'을 못잡고 매년 지당한 소리를 하는데 대해서 시민들은 의도적인 유착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대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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