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박치기!’는 젊음의 무한한 가능성을 투박하지만 펄떡이는 생명력으로 풀어낸 청춘 예찬 영화다. 조총련계 재일동포(영화에서는 ‘조선인’이라고 칭한다)과 일본인의 갈등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주저없이 다루고, 불행한 역사가 만들어낸 반목과 질시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영화는 미래를 향한다.
프랑스가 68혁명의 열기에 들썩이고, 일본 대학생들이 전공투(全共鬪)로 대표되는 학생운동에 매달렸던 1968년. 혼란에 대한 우려와 변혁에 대한 기대가 엇갈리고 있을 무렵, 일본 교토(京都)의 조선고 학생과 히가시고 학생은 매일 싸움에 정신이 팔려 있다.
그 와중에 히가시고 재학생 고우스케는 “언제까지 싸움만 하려느냐”는 선생님의 채근에 못이겨 조선고에 친선축구 시합을 제안하러 간다. 그리고 플루트를 부는 청순한 이미지의 경자를 만나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경자에게 접근하려면 일본인에 대한 경계심 등 넘어야 할 벽이 한 두개가 아니다.
경자의 오빠 안성은 히가시고 깡패들과 거의 매일 ‘맞장’을 뜨는 조선고의 ‘쌈짱’이다. 내세울 거라곤 박치기 밖에 없지만 동료들과 히가시고 수학여행 버스를 뒤집어엎을 정도로 혈기방장하다. 고우스케는 한국어를 배워 남북분단의 아픔이 담긴 노래 ‘임진강’을 부르며 경자에게 다가서고, 이내 안성 패거리와 막역한 사이가 된다.
영화 속의 조선인 고교생들에게 청춘은 온갖 차별을 이겨내는 자존심이자 새로운 꿈을 키워가는 원동력이다. 일본인 고등학생 고우스케에게 젊다는 것은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잘못 알고 있었던 또 다른 미지의 세상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원천이다. 안성이 일본 애인과의 사이에서 새 생명을 얻어 새로운 희망을 불 지필 수 있는 것도, 고우스케가 편견의 강을 건너 조선인의 애환을 통감하게 되는 것도 모두 청춘의 특권이다.
영화는 때론 잔인하리만치 사실적인 싸움 묘사로 한일관계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시종 웃음을 잃지 않는다. 공중전화기를 털어 친구의 ‘고래잡이’에 돈을 보태주거나 고우스케에게 엉터리 한국어를 가르쳐줘 곤경에 빠뜨리는 안성 패거리의 행태는 웃음보를 자극한다.
영화는 코미디와 액션의 절묘한 화음을 맞춰가며 어두운 현실도 피하지 않는다. 관(棺)이 들어가기 조차 힘든 좁은 집과 차별 대신 내키지 않는 북송(北送)을 선택해야만 하는 현실 등 조선인 사회의 비극을 반추한다. “너희 젊은 일본 놈들이 뭘 알아. 할머니 앞에서 갑작스레 끌려와 갖은 고생을 겪은 아픔을 어떻게 알겠어”라며 울분을 토하는 조선인 어른의 말을 빌려 일제의 만행을 서슴없이 고발해 가슴을 저미기도 한다.
일본 배우들의 어눌한 한국어 대사마저도 거북하기보다는 사랑스럽다. 과거의 과오를 인정하고 현실의 갈등을 과감 없이 묘사하는, 그러면서도 겸연쩍은 듯 화해를 제안하는 영화의 태도가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이다. 영문 제목 ‘We Shall Overcome Someday’처럼 언젠가 역사가 만들어낸 서로에 대한 편견을 극복할 수 있다면 영화가 말하듯이 한일관계의 미래는 절망보다 희망에 더 가깝다.
마츠야마 다케시(松山猛)가 2002년 노래 ‘임진강’을 모티프 삼아 펴낸 소설 ‘소년M의 임진강’을 옮겼다. 재일동포인 이봉우 씨네콰논 대표가 제작을 맡았고 중견 감독 이즈츠 가즈유키(井筒和幸)가 메가폰을 잡았다. 일본 영화잡지 키네마준보와 아사히신문이 각각 선정한 2005년 베스트영화 1위에 오르는 등 일본에서도 숱한 화제를 뿌렸다. 14일 개봉. 15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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