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어쩌면 많은 연구자들이 벌써부터 기다려온 책일지도 모른다. 1979년 첫 권을 낸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94년 제6권으로 마무리될 즈음부터 국내 학계의 근현대사 연구가 어느 때보다 무르익었기 때문이다. 시대적인 소용에도 불구하고 ‘해전사’는 이 물리적인 ‘시차’ 때문에 일찍이 속편을 봤어야 하는 책이었다.
문제는 ‘해전사’에 대한 비판을 자임하면서, 한편으로 ‘해전사’의 속편으로 볼 수도 있는 ‘재인식’이 근현대사에 대한 보수적 인식을 대변하는 책으로 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출간 전부터 편집위원들이 일제시기부터 1960년대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해방전후사의 인식’보다 좀 더 균형잡힌 시각으로 서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수 차례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그런 혐의를 살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책에 실릴 논문을 고른 편집위원 4명 중 김일영 교수는 ‘뉴라이트싱크넷’이라는 모임에, 이영훈 교수는 ‘교과서포럼’에 참여하고 있다.
‘교과서포럼’은 현 국사교과서가 사실 오류에서 이념 편향까지 문제가 적지 않다며 이를 바로 잡기 위해 결성된 단체다. 둘 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신보수주의’ 학술ㆍ사회단체 중 하나다. 책에 실린 ‘왜 다시 해방전후사인가’에서 이영훈 교수는 ‘해전사’를 좌익민족주의를 대변하는 책으로 심하게 몰아세우고 있다.
실린 글들이 한결같이 균형감각을 갖췄느냐는 것도 따져볼 문제다. 한국전쟁 이후 현대사를 전공한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는 “한미방위조약 체결은 긴 교섭기간 전체를 놓고 공과를 평가해야 하며, 경제에 무관심했던 이승만의 수입대체산업화를 업적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그 동안 이승만의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된 건 사실이나 이런 식의 종합적이지 못한 평가가 균형 잡힌 역사 서술에 무슨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고 덧붙였다.
김범수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