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원장 김유승)이 10일로 창립 40돌을 맞는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KIST를 헷갈리는 사람이 있어 KIST 연구원들이 당혹해하는 경우가 있지만 70년대 KIST는 ‘최고의 사윗감’으로 손꼽힌 인재들의 집합소였다. 과학기술이 현대로 올수록 국부(國富)와 산업발전을 직접적으로 좌우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KIST다.
중화학공업을 통한 산업 근대화의 출발점에서 KIST는 기술 개발과 이전의 역할에 앞서 철강, 조선 등 산업화의 밑그림을 그린 싱크 탱크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예가 1968년 포스코 건설에 기여한 김재관 인천대 명예교수다. 60년대 제철회사를 만들기 위해 미국의 한 회사에 타당성 보고서를 의뢰해 세계은행의 차관을 받으려던 시도가 한번 실패한 후 박정희 전 대통령은 “KIST에 맡기라”는 특명을 내렸다.
김재관 박사는 KIST에 오기 전부터 “한국에도 제철회사가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보고서를 만들어 다녔던 인물. 김 박사가 기술적 검토를 맡고, 윤여경 당시 KIST 경제분석실장이 수요분석을 맡아 보고한 철강회사의 밑그림은 오히려 초안(연산 60만톤)보다 규모가 대폭 확대된 103만톤급이었고 곧 200만톤, 500만톤으로 늘린다는 구상이 포함됐다. 기술자문을 한 일본 기술자들이 소극적으로 설비를 제안했을 김 박사는 “저것 갖고 냉장고밖에 못 만든다. 우리는 앞으로 선박을 만들거다”라며 펄펄 뛰었다. 윤여경 박사는 “김 박사는 당시 ‘이런 식이면 하지 마라. 내일 대통령 만나서 안 하겠다고 하겠다’고 버텼다. KIST 연구팀이 대통령을 만나자고 하면 언제든 만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현대의 조선사업도 아이디어는 KIST에서 싹텄다. 대통령 지시로 기계공업 육성계획을 논의하던 KIST 연구팀의 회의에서 한국기계연구소장을 지낸 김훈철 박사는 “우리나라도 25만톤급 화물선박을 만들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쳤다. 조선소는 커녕 달랑 2,700톤급 수리공장밖에 없던 시절 어리둥절해 하는 박사들에게 그는 “조선 그거 단순한 겁니다”라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조선 기술의 3요소가 설계, 특수용접, 엔진인데 엔진이야 어느 나라든 조선 회사와 구분돼 있는 것이고, 설계도면은 세계적으로 보증받아 판매되는 도면이 있으며, 특수용접기술은 자신이 스웨덴 회사에서 기술도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KIST 연구팀이 박 대통령에게 이를 설명하자 배석한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그거 호텔 짓는 것과 다를 바가 없네요”라며 자신감을 보였다는 것이다.
KIST는 1966년 50명의 연구원으로 출발했다. 연구비는 수천만원 수준이었다. KIST 설립 자금도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국비 장학금을 받고 유학한 이들을 불러모았고 1세대 KIST 연구원은 이후 과기부 장관, 각종 연구소장 등을 지냈다. 고 박 대통령이 KIST를 직접 챙겼던 일은 익히 알려져 있다. 초대 KIST 원장을 지낸 고(故) 최형섭 박사는 회고록에서 “미 존슨 대통령이 박 대통령에게 개인적 선물로 백악관 과학기술담당 고문 호닉 박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호닉 박사가 공과대학을 만들어주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는데, 박 대통령이 간곡히 공업기술연구소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KIST는 전화가 귀하던 70년대 1세대 전전자 교환기를 개발했고, 비디오 테이프용 폴리에스터 필름을 개발해 현재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다. 1988년 올림픽 때 100㎙ 달리기 금메달을 박탈당한 벤 존슨의 도핑테스트를 맡았던 것도 KIST의 기술이었다. 또한 세계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LG 에어컨의 열 교환기 효율이 높은 것은 KIST의 플라즈마 표면개질 원천특허 덕분이다. 한남대 설성수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KIST는 설립 이후 2003년까지 55조원의 경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80년대부터 민간기업 연구소와 대학들이 양적으로 팽창하고 연구주체들이 다원화하면서 정부 출연연구소로서의 KIST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통증억제 관련 이온채널 연구로 명성이 높은 KIST 신희섭 박사는 “2002년 팀을 발족했을 때는 말 그대로 세계 최강의 연구팀이었으나 지금은 자신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 사이 화학전공 5명, 생물전공 4명의 연구원들이 대학 교수로 나가버린 탓이다. “다양한 분야에 걸친 공동연구를 하기엔 KIST가 유리하다”며 포항공대 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온 신 박사는 “연구비를 안정적으로 보장하지 않고, 정년 단축 연구원 대우가 소홀한 제도 탓에 출연연구소가 갈수록 경쟁력을 잃고 있다. 이는 국가적으로 애석한 일”이라고 씁쓸해 했다.
KIST 출신의 채영복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정부가 국가의 미래성장동력과 연구개발에 대한 로드맵을 그려 정부출연연구소의 구체적인 역할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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