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났으니 참으로 병술년(丙戌年), 개의 해가 된 셈이다. 개와 관련된 여러 얘기 가운데 깊은 인상을 주었던 두 가지가 생각난다.
유방과 항우가 숨가쁘게 천하를 다투던 시절에 괴통이란 유세객이 배수진(背水陣)으로 유명한 한신(韓信)에게 유방에게서 독립해 스스로 왕이 되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로 경고한다.
항우를 멸한 후엔 한신 그 자신이 위험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한신은 결국 그의 말을 듣지 않아 시기를 놓쳤고, 뒤늦게 모반을 꾀하다 발각되어 참수당하였다. 최후의 순간에 한신은 괴통의 말을 안 들은 것이 한스럽다는 탄식을 남겼다. 이에 유방은 괴통을 잡아들여 문초한다. 그때 괴통의 대답이 걸작이다.
“도척의 개가 요(堯) 임금을 보고 짖는 것은 요 임금이 어질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개는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짖은 것이다. 그때 나는 한신만 알았지 당신 유방은 알지 못했으니, 내가 한신을 위해 계책을 낸 것이 무슨 잘못이냐.” 도척은 흉악한 도적이고 요는 성인이지만, 개는 오직 그 주인만을 알아보지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는 따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유방은 그를 풀어주었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보면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신라와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키고 나서 당의 군대는 부여의 언덕에 주둔하면서 몰래 신라를 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신라가 이를 알아차리고 대책을 논의했다. 김유신은 당나라 군사를 치자고 주장하였다. 이때 태종무열왕이 주저하며 말했다. “당나라 군사가 우리를 위하여 적을 멸하여 주었는데 도리어 그들과 싸운다면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겠는가?”
김유신은 단호하게 선을 그어 말한다. “개는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인데 어찌 어려움을 당하여 스스로를 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청컨대 대왕께서는 허락하여 주십시오!” 우리를 해치려 한다면 그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데, 무슨 동맹국 타령인가 하는 타박이다.
두 얘기를 보면 묘한 대비가 느껴진다. 괴통과 한신의 고사에 나오는 개는 맹종하고 희생당하는 개라 할 수 있고, 김유신이 말하는 개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우리에게는 김유신의 개가 더욱 와 닿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韓)과 한(漢), 두 민족의 원형질을 엿볼 수 있을 듯도 하다.
박성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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