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어떤 장르의 음악을 듣느냐는 것은 그가 곧 어떤 인종인가를 뜻한다. 흑인은 소울과 R&B를, 백인은 록과 컨트리를 듣는 게 당연하다. 특정 인종 사회의 톱스타가 되면 시장이 확보되고, 그래야 미국 주류사회로부터도 관심을 얻을 수 있다. 미국 전체의 톱스타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현재 어셔와 비욘세로 대표되는 흑인음악이 팝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도 높아진 그들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스티비 원더, 마이클 잭슨, 휘트니 휴스턴 등으로 이어지는 흑인 팝 스타를 꾸준히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주류 음악시장이 3일 뉴욕에서 첫 공연을 가진 비에 주목한다면 그 때문일 것이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경제력은 무시 못할 수준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미국에는 아직 그들의 ‘아이콘’이 될 만한 남성 팝 스타가 없다. 그런데 비는 서구인에 가까운 신체조건에 가늘고 쌍꺼풀 없는 눈으로 대표되는 동양인의 외모를 동시에 지닌데다, 이미 여러 아시아 국가의 스타다. 그만큼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매력적일 수 있다.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이 비의 공연에 대해 “독창성이 없다”며 평한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비를 평가하는 기준은 그가 얼마나 ‘흑인처럼’ 춤 추고 노래 부르느냐가 아니라, 서구형 신체조건과 팝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이 아시아인이 기존 팝 스타들과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야 비가 그들의 음악산업에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고, 비(非) 아시아계 미국인들 역시 그 새로움에 끌릴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리키 마틴, 마크 앤소니 등 라틴 팝 뮤지션들이 빌보드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들에게 열광한 엄청난 숫자의 라틴계 미국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인종적, 문화적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우리 가수들도 실력만 있으면 ‘다른’ 인종까지도 열광시켜 미국 시장에서 우뚝 설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은 그야말로 오만이고 착각이다.
그래서 비의 뉴욕 공연에 온 관객 대부분이 아시아계 여성이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비의 당장의 목표가 콘서트에 오는 백인 관객들의 수를 늘리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아시아계 미국인만으로도 몇 만명을 채우는 스타가 되어야 한다. 그들의 지지를 얻을 때, 미국에서 활동할 기반과 더불어 미국 전체의 팝 스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된다.
앞으로 비와 그의 프로듀서 박진영이 고민해야 할 것은 그가 얼마나 춤과 노래에 재능이 있는가를 입증하는 게 아니다. 그건 기본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미국인들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아시아인의 이미지를 확보하느냐 하는 것이다.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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