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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파워클래식] 악장 중간 감동의 박수 기분좋게 넘겼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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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파워클래식] 악장 중간 감동의 박수 기분좋게 넘겼으면…

입력
2006.02.0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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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할 사실이 하나 있다. 어릴 때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털어놓겠다. 고등학교 시절,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미도리의 내한 연주회에 갔다.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했던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 모두가 사인회를 기대했는데, 미도리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사인회가 취소됐다. 왜 심기가 불편했을까? 악장 중간중간에 튀어나온 박수 소리가 문제였다. 바로 그 자리에 내가 있었고, 나는 가장 크게 박수 친 사람 중 하나였다!

내가 왜 그랬을까? 어려서 경험이 부족했던 탓일까? 아니다. 당시 예술고 학생이었고, 악장 중간에 박수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어쩌면 고의적 범죄였는지도 모른다. 항변하자면 나의 의도는 지극히 순수했다. "중간에라도 너무 좋으면 박수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곡이 끝난 줄 알고 박수 친 것은 아니니까."

돈 내고 표를 사서 연주를 감상하고 열심히, 그것도 여러 번이나 힘차게 박수친 나다. 이런 나를 범죄자로 만들 기준을 도대체 누가 세웠단 말인가? 위대하신 바그너 아저씨다. 오페라만 잘 쓰는 게 아니라 문학, 건축, 철학 등 워낙 여러 방면에 재능이 뛰어났던 바로‘그 분’이다. 공연장이 예술 감상이 아닌 사교장으로 변하는 것을 싫어했던 그는 결국 탁월한 언변으로 공무원들까지 설득해, 로비가 없는 바그너 오페라 전용극장까지 만들었다. 덕분에 귀족 관객들은 공연을 보고 나오면 말 한마디 못하고 바로 집에 가야 했다. 이런 그가 만든 문화 중 하나가 바로‘악장 사이에 박수치지 않기’다.

가장 큰 이유는 음악의 흐름이 끊어진다는 것이다. 숨죽이고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야 하는 작곡가의 의도를 박수가 방해해서야 되겠는가. 또 연주자에게 얼마나 방해가 되겠는가? 이러한 발상은 음악이 귀족들의 놀이로 천대받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예술로 우대받는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클래식은 천대받기보다는 오히려 대중음악에 비교되어‘어렵고 고상한’ 장르가 되어버렸다. 오히려 언제 박수쳐야 할지 관객이 고민하지 않는가.

이제 연주자로서 쑥스런 사실을 밝히겠다. 대부분의 연주자는 악장 도중에 박수를 쳐도 크게 방해받지 않는다. 그런 상황을 불편해 하는 다른 관객의 심기를 건드릴 수는 있다. 그것을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연주자도 있지만, 관객의 작은 실수가 오히려 분위기를 편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정말 감동받아 중간에 치는 박수와 공연장 예절을 지키지 않는 것은 구별될 수 있고, 그 차이는 무대 위의 연주자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좀 너그러워 지는 데 어떨까. 예전에는 너무 좋은 악장이 끝나면 기립박수까지 나와서 공연을 잠시 멈춰야 하기도 했다더라. 얼마나 자연스런 광경인가? 미도리 누님, 나의 순수했던 의도를 너그러이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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