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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관료 로비' 해도 너무한다/ 민원 해결위해 현직 후배 압박 뒷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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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관료 로비' 해도 너무한다/ 민원 해결위해 현직 후배 압박 뒷말

입력
2006.02.0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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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경제수장까지 지낸 고위 관료 출신 A씨가 최근 인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현 직책은 모 법무법인의 고문. 그날 입국하는 한 외국기업 회장을 영접하기 위해 공항까지 직접 출동한 것이다.

주변에선 “장관까지 역임한 분이 저런 일까지 해야 하느냐”는 비아냥이 나왔지만, “수 억원의 연봉과 최고 대우를 받는데 그 정도는 해야지”라며 당연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 장면 2.

경제부처에서 차관급으로 일하다 지난해 퇴직한 B씨는 요즘 하루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있다. 한 국책연구소에 방을 얻어 출근하면서 민간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법무법인과 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상태다.

하지만 내심 공기업 사장직에 기대를 걸며 자신의 몸값을 저울질 하기 위해 이곳 저곳에 전화를 걸고, 사람들을 만나느라 현직 때보다 더 바쁘다.

전직 관료들 해도 너무 한다

전직 관료 출신들의 파렴치를 둘러싼 뒷말이 관가 주변에 무성하다. 현직에 있는 후배들과 부하들을 상대로 치열하게 로비를 벌이고, 그러다 보니 전직의 위치에 어울리지 않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한 공무원은 “참여정부 들어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이전만 해도 점잖았던 퇴직관료들의 행태가 점점 악착같아 지고 있다”고 표현 했다. 자연히 후배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해도 너무 한다” “후배로서 보기 부끄럽다”는 불평이 쏟아져 나온다.

경제부처 고위직을 지낸 C씨의 경우 아예 브로커로 나섰다. 변호사 자격증이 없기 때문에 검찰 간부 출신의 지인과 커넥션을 맺는 방식으로 법망을 피할 장치도 마련했다.

C씨는 기업들로부터 세무관련 민원 등을 받아 과거 자신의 부하 직원들을 통해 해결하고 거액의 대가를 챙기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는 검찰 간부 출신 인사가 민원 기업과 고문 계약을 맺고 1억~2억원의 고문료를 받는 형태를 취한다.

물론 그 중 20~30%는 검찰 간부 출신 인사가 가져가고 나머지는 C씨가 챙긴다.

모 광역단체 국장을 지낸 D씨는 중견 건설업체 E사로 옮긴 뒤 치열한 로비 행태를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는 수도권의 택지개발사업에서 유리한 조건을 따내기 위해 매일같이 후배 공무원을 찾았다.

안면이 없으면 담당 공무원의 학연과 지연을 분석,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최대한 가동했다. 그는 그 실적만으로도 자신의 재직 당시 연봉에 해당하는 5,000만원의 성과급을 챙겼다.

국방부에서 용산 미군기지 이전사업을 담당하다 작년 4월 전역한 뒤, 다음날 곧장 기지이전 사업권을 따내려는 미국계 건설사에 부사장으로 취임한 예비령 대령 L씨의 사례는 관가의 모럴해저드가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업관련 핵심 정보가 고스란히 사기업체로 넘어갔지만, 행정자치부가 고시한 퇴직 공무원 취업제한 업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는 법망을 피했다.

전역 장성들이 방위산업 관련 국내외 대기업이나 소규모 에이전트(오퍼상)로 진출, 국방부나 육ㆍ해ㆍ공군의 후배들을 상대로 치열한 로비를 벌여 지탄을 받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방부의 한 실무자는“장군까지 한 사람이 납품 따려고 후배들에게 압력을 넣고 다니는 것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고 말했다.

퇴임 교육관료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현직에서 물러나면 으레 사학으로 몰려가 정부의 각종 특성화사업 지원을 따내기 위한 전위대 역할을 자임한다.

특히 교육관료들의 사학 전직은 공직자윤리법의 제재도 받지 않는다. 윤리법은 퇴직 공무원의 취업제한 기업을 영리사기업만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일 속에 가려진 로펌의 고문들

서울 광화문 4개 빌딩에 흩어져 있는 법무법인 김&장 사무실. 이곳에서 이른바 ‘고문’ 직책을 달고 일하는 전직 고위 관료들의 정확한 명단을 아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힌다.

중량급 인물들로 가득 차 있어 ‘애프터 캐비닛’이라고까지 불리지만, 명단은 고사하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변호사도 세무사도 회계사도 아니다.

세종 태평양 등 다른 대형 로펌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재경부, 공정위, 국세청 등 경제부처 출신 고위 관료들이 대거 둥지를 틀고 있다. 당연히 이들의 역할에 물음표가 찍히지만, 법인측은 “관가에서 해왔던 일들을 변호사들에게 교육하고 자문하는 정도”라고만 했다.

하지만 로펌측 관계자의 증언은 다르다. “고문에게 배정된 사무실은 일반 변호사의 사무실보다 5배는 크다. 기사가 딸린 최고급 승용차에 수 억원의 연봉까지 챙긴다.

이들이 자문업무만 하고 있다는 것은 소도 웃을 얘기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들의 역할은 수임과 로비”라고 단언했다. 상대적으로 후자에 방점이 찍힌다고도 했다.

로펌의 전직 관료들은 로펌쪽과 정부 당국자, 그리고 다른 업계의 중요인물을 연결하는 가교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한 로펌 관계자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 해당 부처 장관을 잠시라도 볼 수 있게 만드는 게 고문의 일”이라고 했다. 달리 말해 ‘허가 받은 브로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일을 하면서 전직 관료들이 받는 대우는 상상을 초월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일치된 증언이다. A로펌측 인사는 “경제부처 6급 출신이 이곳에서 연봉 1억원을 받는다면 짐작가지 않느냐”고 했다.

IMF 이후 몸을 불린 로펌의 경제관료 영입 경쟁은 최근 들어 절정을 맞고 있다. 대형 로펌이 종합병원식 ‘토털 서비스’를 대기업에 제공하려다 보니 일부부처의 경우 퇴직관료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공정위의 한 공무원은 “누가 퇴직했다는 소문만 나면 로펌에서 제일 먼저 연락이 온다”면서 “경쟁적으로 억대의 연봉과 차량 지원 등을 제시하는 것으로 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고재학(팀장)·조철환·이동훈·박원기 기자, 사회부=김정곤 기자, 정치부=정녹용 기자 news@hk.co.kr

■ 제도상 문제점

퇴직 공무원의 유관 업체 행(行)이 러시를 이루고 있지만, 이를 걸러 낼 제도의 ‘구멍’은 크다. “퇴직 공무원들이 관련 업체에 취업하겠다고 맘먹고 나서면 막을 방도가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솔직한 토로다.

물론 공직자윤리법이라는 제도적 그물 망이 있기는 하다. 이 법은 4급 이상 공직자에 대해 퇴직 일로부터 2년간, 퇴직 전 3년간 근무한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리 사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유명무실한 선언적 규정에 불과했다.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여부, 즉 ‘업무연관성’에 관한 판단을 해당 기관장에게 맡겨뒀다. 제 식구 감싸느라 제대로 걸러낼 리 만무했다. 그나마 연관성 판단을 안 받고 취업해도 그만이었다.

“눈 가리고 아웅하냐”는 비난이 쏟아지자 행정자치부는 최근 관련 규정 일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시행령을 고쳤다. 올해부터는 제3의 기관인 공직자윤리위로부터 업무연관성 여부를 반드시 판단 받도록 한 것이다. 공직자윤리위측은 “그간 지적돼온 문제의 핵심을 고친 만큼 실질적인 규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아직은 회의적 시각이 많다. 윤리위는 2002~2004년 3년간 모두 9건의 업무연관성 판단을 요청 받았지만 7건을 “문제 없다”고 통과시켰다. 온정적 해석을 해온 전례를 봤을 때 “제대로 걸러낼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클 수밖에 없다.

다른 제도적 허점도 여전하다. 윤리법이 규정한 취업 기준은 국민건강보험료 납입여부다. 돈은 받지만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는 취업자는 감지할 수 없다. 법무법인이나 기업체 등의 고문이나 사외이사는 규제가 불가능하다. 정부 부처를 상대로 한 상당수 로비가 고문 등의 직함을 단 퇴직 공무원들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 참여연대 이재명 투명사회국장은 “취업여부를 형식적 고용관계가 아닌 실질적 활동으로 판단하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자본금 50억원 이상, 연간외형 거래액 150억원 이상이 돼야 취업제한 업체로 지정되는 현행법상 기준도 하향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기중개업체 같은 소규모 영리기업은 규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취업제한 업체를 영리 사기업체로만 규정해 교육 관료들의 사학 행은 아예 체크 대상도 아니다.

업무연관성을 피하기 위해 신분세탁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업이 운영하는 연구소를 경유하는 게 대표적이다. A그룹의 경우 공직자윤리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삼성경제연구소를 신분세탁소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기획취재팀=고재학(팀장)ㆍ조철환ㆍ이동훈ㆍ박원기기자 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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