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출신인 탁신 치나왓 태국 총리가 10년여 정치생활에서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내부거래 및 탈세로 개인재산을 부풀려온 전형적 권력형 비리에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탓이다. 3일 우라이완 티엔통 문화부 장관, 4일 소라앗 클린프라툼 정보기술부 장관이 “좋은 정부를 원한다”며 연이어 사퇴한 것도 치명적 악재다.
6만 여 명의 태국 시민은 4일 방콕 시내에 모여 5일 아침까지 ‘탁신 총리 해임’을 주장했다. 1992년 군부 독재를 물러나게 했던 시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국민들이 분개하는 이유는 지난달 말 탁신 가족의 ‘친 코퍼레이션’주식 매각 과정에서 나온 부정 의혹 때문이다. 이번 거래를 통해 탁신의 장남 판통태와 장녀 핀통타는 이 회사 주식 49.6%를 싱가포르 투자회사 ‘테마섹 홀딩스’에 매각, 약 19억 달러의 이익을 챙겼다. 이들이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세운 지주회사 ‘앰플 리치’를 통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태국 영자신문 네이션은 “골목의 식당에서 파는 국수 한 그릇까지 세금을 메기면서 태국의 가장 부유한 가족은 세금 한푼 내지 않으려고 갖은 수단을 동원했다”고 비난했다. 탁신의 딸 핀통타는 태국 최고의 부자로 꼽히고, 2위 포자만은 탁신의 처남, 4위 판통태는 탁신의 장남이다. 가족의 전 재산을 합치면 50억 바트(한화 약 300억원)에 달할 정도다.
경제학자 파숙 퐁파이칫 박사는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기업들은 탈세, 계약 수수료 감면, 경쟁자 차단 등을 통해 다른 기업보다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며 “재벌이 정권을 차지한 나라만이 이 같은 양극화를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친 코퍼레이션은 태국 최대의 이동통신회사로 항공, 위성, 방송까지 운영하는 거대 재벌이다. 87년 탁신이 창업해 무선호출기 사업으로 덩치를 키운 뒤 90년 200억 바트를 투자, 통신위성 20년 운영권을 따내면서 급성장했다. 정치에 입문해 부총리로 일하면서 내부 정보를 빼내 98년 아시아 외환위기에서 기업이 살아 남았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탁신 하야 시위를 주도한 언론인 손디 림통굴은 “태국을 구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국왕에게 총리 해임을 건의하는 탄원서를 전달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대부분 중산층 및 지식인이다.
탁신 총리는 그러나 “국민들이 준 자리를 내놓을 수 없고, 국왕의 명령만이 나를 물러나게 할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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