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의 화제인 공연 ‘눈물의 역사’를 만든 벨기에 예술가 얀 파브르(48)가 서울에 왔다. 10~12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 오를 이 작품은 지난해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을 발칵 뒤집어놓은 화제작이다.
그가 안무, 대본, 연출을 도맡은 이 작품은 무용수들이 15분간 악을 쓰며 우는 것으로 시작해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채 뛰어다니거나 무대에서 오줌을 싸는 등 그야말로 시각적 충격의 연속이다. 아비뇽에서는 환호와 야유가 엇갈렸다. 그가 해온 모든 작품이 다 그랬다. 혹시 도발을 즐기는 것은 아닐까.
“결코 도발하려는 게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도발적일 수는 있겠지만, 그게 출발점은 아니지요. 관객들이 충격을 받거나 놀랄 수는 있어요.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리니까요.
이 작품에서 노출은 아주 중요하고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옷을 다 입은 채 흐르는 땀을 보여주기는 힘드니까요. 제게 아름다움은 유리처럼 깨지기 쉽고 나비처럼 약한 것입니다. 벗은 육체는, 그리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백 개의 유리그릇은 인간 육체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인간의 ‘몸’은 그가 최근 10년 동안 매달려온 화두다. 그리고 ‘눈물의 역사’는 전작 ‘나는 피다’ ‘울고 잇는 육체’를 잇는 체액 3부작의 완결편이다.
“사람들은 피와 땀, 눈물, 오줌을 부정적으로 보지만, 저는 체액이 인체 내부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거부하고 억압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어요. 어릴 때 제 어머니는 다친 상처에 오줌을 바르게 하셨죠. 5년 전 ‘나는 피다’라는 작품에서 저는 제 피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건 옛날 화가들이 뼛가루나 피를 물감에 섞어 더 선명한 색을 내던 전통에서 나온 거에요. 체액은 본래 긍정적인 것이었죠.
저는 그 힘을 되살리고 싶어요. ‘눈물의 역사’는 연극적인 작품입니다. 눈물, 땀, 오줌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며 인간의 취약성을 말하지요. 이 작품은 체액을 잃어버린 메마른 시대를 향해 던지는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물은 공감과 연민, 자기개방의 신호입니다. 우리는 우는 법을 배워야 해요. 재앙이 닥친 뒤에 속절없이 울 게 아니라, 닥치기 전에 말이죠. 운다는 것은 서로 보살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우는 법을 보여주려고 연출해 보이는 장면들 때문에 사람들은 당황하거나 불쾌해 하기도 한다. 정제된 춤이라야 무용이라고 여기거나, 추한 것은 아름답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런 반응은 그의 미학이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운 몸짓은 누구나 만들 수 있습니다. 제게는 그보다는 그런 아름다움이 어디서 비롯돼 어디로 가는가, 철학적, 정치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더 중요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안무가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방어하는 사람, ‘미의 하인’입니다.”
그는 전방위 예술가다. 시각예술가로 출발해 무대예술로 영역을 확장해 화가, 조각가, 희곡작가, 오페라와 연극 연출가, 안무가, 무대장치와 의상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파브르 곤충기’의 작가 앙리 파브르의 증손자로 어릴 때부터 곤충에 관심을 쏟았고 해부학과 생리학을 공부했다. 그런 이력이 육체와 체액을 탐구하는 집요한 작업의 바탕이 됐는지도 모른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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