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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천상병 시인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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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천상병 시인에 대한 예의

입력
2006.02.0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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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제목도 그러하듯이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 그가 1970년 가을에 쓴 ‘소릉조(少陵調)’를 읽는다. ‘소릉’은 당 시인 두보의 호다.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든다면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천상병은 서울대 상대를 자퇴하고 직장도 없이 시와 평론만 쓰고 살았다. 아는 문인이나 친구를 만나면 몇 푼의 막걸리 값을 타서 동가식서가숙하며 살았다. 이를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남들도 당연시했다. 하나의 전통적 시인상을 이어가는 이 자유 시인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동백림 사건의 예술인 희생자들

1967년 여름 그는 돌연 ‘동백림 간첩단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그는 대학 동문이자 친구가 독일 유학 중 동독을 방문했다는 얘기를 듣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100~6,500원 등 모두 5만여 원을 갈취했다는 것이다. 6개월 간 갖은 취조와 고문을 받고 선고유예로 풀려났다.

세 차례나 당한 전기고문으로 온전하게 걷지도 못했으며 말도 제대로 못했다. 장기간 정신병원 신세를 져야 했으며, 기인이기보다 폐인에 가까운 상태로 삶을 마쳤다. 무서운 사건을 겪고도 발표된 ‘소릉조’는 세상을 보는 그의 천진무구함을 엿보게 한다.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재독작곡가 윤이상, 재불화가 이응로 등 예술인과 의사, 공무원 등 194명이었다. 취조와 고문 과정에 자살기도도 한 윤이상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그는 증언했다. <내가 유럽에 살고 있지 않았고, 많은 친구를 가지고 않았다면, 또 예술가가 아니었으면, 나는 박 정권에 죽음을 당했을 것입니다. 죽음에 직면해서도 옥중에서 오페라를 썼습니다. 그 오페라는 서독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스웨덴에서 상연되었습니다…>

최근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위’는 이 엄청난 사건이 과장ㆍ조작되었다고 발표했다. 해외 거주자에 대한 불법연행, 조사과정의 가혹행위, 간첩죄의 무리한 적용, 범죄사실의 확대과장, 서울대 학생 서클인 민족주의비교연구회에 대한 확대 등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민청학련 사건과 마찬가지로 통탄스러우나, 뒤늦게나마 다행스럽기도 하다.

미국 정부는 1930년대부터 40년 간 터스키지라는 시골에서 가난한 문맹 흑인농부 600명을 대상으로 성병실험을 했다. 1997년까지 대상자 중 399명이 감염되어 128명이 사망했다. 생존자 8명은 90대 이상의 노인이 됐다.

사건이 언론에 폭로되자 격렬한 항의가 일었고, 피해자들은 소송해서 1,000만 달러를 받아냈다. 클린턴 대통령은 생존자 4명과 가족을 백악관으로 초청하고 정부 실책을 처음 시인하면서 깊이 사과했다. 희생자 추모비도 세웠다.

●정부차원에서 공식 사과 있어야

독재정권은 권력유지를 위해 공안사건을 꾸미고 과장하여 국민심리를 얼어붙게 함으로써 저항세력을 순치시킨다. 증거가 불충분하면 ‘아니면 말고’다. 독재가 물러가면 과거의 잘못을 광정(匡正)하는 것이 순리다.

사건의 과장ㆍ왜곡에 일조했던 언론이 역사 광정에 나서는 것은 반성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수 언론은 광정 뒤집기를 하고 있다. 사설 제목만 봐도 뒤틀려 있다. ‘언제까지 정황만으로 과거사 헤집을 것인가’, '과거사위원회의 위험한 출발’, ‘과거사로 국가혼란 얼마나 더 키울 셈인가’

자랑스러우나 힘없는 시인ㆍ음악가ㆍ화가 등은 동백림 사건으로 상처와 한을 품고 세상을 떴다. 부끄러운 과거가 한 겹 더 벗겨졌다. 동백림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 등에서 보다 구체적인 진실이 규명되어야 하고, 재심을 통해 피해자 명예회복도 이뤄져야 한다. 이제라도 정부 차원에서 공식 사과하여 비인간적인 역사의 수치를 씻어내야 한다.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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