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자가 홀대 받고 있다. 거액의 기부금으로 세운 건물에서 기부자의 이름을 마음대로 빼버리는가 하면, 기증 받은 수천점의 미술 작품에 대해 ‘절반이 가짜’라고 일방적으로 발표, 기증자를 허탈하게 만든다.
마땅히 뒤따라야 할 예우와 존경은 온데 간데 없고 기증 받는 쪽의 무성의만 가득한 곳에서 바람직한 기부 문화가 꽃피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충남대는 거액을 기증한 ‘김밥 할머니’ 고(故) 이복순 할머니의 뜻을 기리겠다며 명명한 ‘정심화 국제문화회관’에서 ‘정심화(正心華)’라는 이 할머니의 법명을 떼기로 해 학교 안팎의 비난을 받고 있다. 이 할머니는 1990년 11월 김밥 행상으로 평생 동안 모은 50억원 상당의 부동산과 현금 1억원을 기증했다.
6일 충남대 관계자에 따르면 충남대는 3월1일부터 정심화 국제문화회관 이름을 ‘충남대 국제문화회관’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충남대측은 “국제문화회관 단지에 국제교류원과 언어교육원 건물이 새로 건립되면서 국제적 교육문화단지로서의 기능을 함축적으로 상징하는 새로운 명칭이 필요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충남대는 대신 국제문화회관내 정심화홀(대강당)의 명칭은 종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충남대는 이미 두 차례나 건물 이름을 바꾼 전례가 있어 과연 기부자의 아름다운 뜻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려는 의도가 있는지 의심 받고 있다.
국제문화회관은 김밥 할머니의 기부가 계기가 돼 93년 착공됐다. 충남대는 당초 건물 이름을 정심화 국제문화회관으로 정하고 공사를 시작했지만 외환위기의 여파로 기증 받은 부동산이 팔리지 않고 가격도 떨어지자 공사를 중단했다.
우여곡절 끝에 충남대는 국비 지원을 받았고, 2000년 7월 건물을 완공했다. 대학측은 그러나 건물 완공 후 “김밥 할머니의 기부금이 극히 일부만 투입됐다”며 정심화란 이름을 빼고 국제문화회관으로 명명했다.
그러자 “김밥 할머니의 법명을 넣어 아름다운 기부를 오래도록 기념해야 한다”는 여론이 쇄도했고, 대학측은 2002년 초 여론에 떠밀려 건물명을 다시 정심화 국제문화회관으로 바꾸고 같은 해 8월 김밥 할머니 흉상도 세웠다.
그랬던 것이 4년 만에 타 기부자와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정심화란 명칭은 다시 빠지게 됐다. 이 할머니의 유족은 “충남대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어 건물 이름이 바뀌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서운한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우리는 기부한 것으로 끝이고 모든 것은 충남대가 결정할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동양제철화학 이회림(89) 명예회장이 인천시에 개인 박물관과 8,400여점의 고가 미술품 등을 기증한 것은 지난해 6월. 이 회장은 자신의 고향이면서 기업 터전인 이곳에 재산을 환원한다는 생각에 지난 50년간 수집해 온 미술 작품과 각종 유물을 인천시에 넘겼다.
하지만 인천시는 기증된 유물 중 일부가 가짜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20여명의 평가단을 구성해 유물을 감정했고 지난달 23일 “고가 미술품과 유물 중 47% 가량이 가짜”라고 언론에 발표했다.
문화예술인들의 비난이 쏟아진 것은 당연한 일. 이들은 “통상 유물을 기증 받는 쪽이 사전에 진위 여부를 판별하고 가짜로 판명 나면 조용히 기부자에 되돌려주는 게 관례”라며 인천시의 몰상식을 비판한 뒤 “기증을 받는 쪽은 기증자가 조금이라도 명예에 흠을 입지 않도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박물관협회장 김종규씨는 “박물관과 8,400여점의 문화예술품 기증은 세계문화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며 “평생에 걸쳐 모은 작품들을 아무 대가없이 지역 사회에 내놓은 사람의 선의가 이런 식으로 대접받는다면 과연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시 관계자는 “아직 전체 작품 중 58%정도만 감정평가가 끝났고 나머지는 진행 중”이라며 “기증 받을 때 일일이 확인하지 못한 것은 불찰이며 최종 평가가 끝나면 반환 여부 등을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회사측의 한 간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다시피 했는데 엉뚱하게도 도덕성을 의심 받고 있어 너무나 황당하다”고 불쾌해 했다.
송원영기자 wysong@hk.co.kr대전=전성우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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