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鐵血)재상’으로 통하는 비스마르크 독일제국 초대 총리는 19세기 독일 통일과 공업화의 대업을 이뤄낸 강력한 지도자로 유명하지만 그가 세계 최초로 공적연금 제도를 창안한 선구자라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당시 독일의 운명이 여론이 아니라 철(鐵)과 피(血), 즉 군사력에 있다고 취임연설에서 외쳤던 그는 경제정책에서도 철저한 중상주의로 낙후한 국내 산업을 보호 육성했다. 비스마르크는 노동운동 역시 가혹하게 탄압했지만 한편으로 노동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1883년 질병보험과 산재보험을 도입했다. 복지국가 영국이 연금을 도입한 것은 이보다 무려 40년 뒤였다.
▦ 1988년 처음 도입된 우리의 국민연금은 월 임금의 3%만 내면 60세 이후 생애 평균소득의 70%를 받을 수 있다는 달콤한 공약과 함께 시작됐다.
그러나 최근 이해찬 국무총리가 언급한 대로 이 약속은 처음부터 국민을 상대로 한 ‘사기’로 드러났고, 국민연금은 지금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머지 않아 지급불능 사태를 맞게 될 위기상황이다.
또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세금논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소득파악과 보험료 징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봉급생활자만 ‘피박’을 쓰는 구조에 대한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 이 위기의 국민연금을 개혁하는 막중한 짐을 지게 될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내정자가 연금 보험료를 미납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다.
직장생활을 그만둔 경우에도 지역가입자로 전환해야 하고, 소득이 있는 경우 배우자와 상관없이 가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혹은 생활에 쫓기다 보니 본의 아니게 미납자가 되는 사례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유시민 내정자가 누구인가. 복지 전문가를 자처하고 여당 내 비등했던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장관 지명을 강행하면서 청와대가 내세운 명분이 국민연금에 능통한 전문성 아니었던가.
▦ 일본에서도 2004년 봄 자민당이 연금개혁법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요 각료와 정치인들이 국민연금을 내지 않았던 사실이 속속 폭로되는 국민연금 파동이 벌어졌다.
나중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까지 연루된 이 파동의 후유증으로 자민당은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다. 유시민 내정자의 자질에 대해서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고의든, 실수든 스스로 보험료를 내지 않은 장관이 연금개혁의 깃발을 내건다면 과연 누가 동의하겠는가.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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