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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쌍순 김섭섭 허장가 오공주… 이름 바꿔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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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쌍순 김섭섭 허장가 오공주… 이름 바꿔줘요"

입력
2006.02.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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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하냐고요? 그 두 글자는 입에 담지도 마세요.”

39년 동안 귀에 익은 정든 이름과 최근 작별을 고한 김상우(가명ㆍ39)씨는 조금도 섭섭하지 않단다. 그의 원래 이름은 김섭섭, ‘풍진세상 불꽃(燮)처럼 살아라’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삼아 ‘섭섭한 놈’ ‘뭐가 그리 섭섭해?’라며 놀려대기 일쑤였다. 이름은 그에게 평생 떼고싶은 혹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는 얼마 전 새로운 이름을 얻곤 “가장 평범한 이름으로 바꿨다”고 기뻐했다.

부모가 지어주는 이름은 평생 함께 하며 오롯이 존재를 담아내는 그릇이자 분신이다.

그런데 법원까지 찾아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이름을 바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11월 개인의 의사를 존중해 개명을 원칙적으로 폭 넓게 허가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 이후 전국적으로 월 1만 건 이상의 개명신청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방영된 TV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영향 때문이라지만 개명신청 증가추세가 예사롭지 않다. 통상 5,000건이던 신청이 지난해 8월 7,600건에서 12월엔 1만 건을 넘어섰다.

속사정은 간단하다. 이름을 바꾸려는 이들에겐 이름은 ‘운명의 덫’이다. 강쌍순, 김섭섭, 허장가, 오공주 등 불리는 것 자체만으로 웃음거리가 되는 이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이 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지방법원 호적계에서 만난 김보민(15)양이 그렇다. 김양이 개명신청을 한건 이번이 두 번째다. 3년 전엔 옥민이라는 이름을 보민으로 바꿨다. ‘옥자’ 등으로 놀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명 뒤에 상황은 더 나빠졌다. 친구들은 이번엔 ‘X지’ 라며 놀렸다. 김양은 “친구들이 놀릴 때마다 창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수민으로 개명하려고 왔는데 앞에 한 번 바꾼 터라 허가가 날지 모르겠어요.” 두 번의 전학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는 딸 아이의 상황을 보다못해 왔다는 김양의 아버지는 자신이 붙여준 이름 때문에 딸이 고통 받는 사실에 그 누구보다 괴롭다고 했다.

법원행정처가 발행한 ‘개명 및 호적정정사례집’의 개명허가 신청사유별 비율을 보면 놀림이 가장 큰 60%를 차지한다.

성명철학상의 이유(15%)를 내미는 이들도 있다. 서울 남부지법 호적계에서는 만난 최기호(45)씨는 판촉ㆍ홍보물 제작업을 한다. 하지만 ‘최기호’는 그가 사업 관계로 만나는 이들이 알고있는 명함용 이름일 뿐이다.

본명은 ‘최기준’이다. 그는 “철학관에서 받은 이름을 썼더니 희한하게 일이 잘 풀려 이름이 두 개가 됐다”고 사연을 털어놓았다. 최씨처럼 성명학상의 이유로 개명 신청을 하면 통상 60~70% 허가가 난다는 게 호적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1980년대 중반 일었던 한글 이름 짓기 열풍의 후유증도 남아 있다. 성인이름으론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중소기업의 중견 간부 모한빛(36)씨는 “어릴 때는 이름이 예쁘다는 이유로 귀여움도 많이 받았는데 이젠 아이들 이름처럼 느껴진다”며 “제 주위에 한글 이름을 가진 친구들도 나이를 먹으면서 하나 둘 한자 이름으로 개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개명전문업체 ‘개명 도우미’의 관계자는 “한자문화권에서 한자이름이 없는 것은 큰 손해”라고 말했다.

개명신청이 봇물을 이루면서 온라인 모임 ‘개명클럽’, ‘개명카페’ 등에는 개명 성공기, 실패기 등 개명신청 허가를 받아내기 위한 갖은 방법이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개명 허가율이 높은 법원을 소개하는 글도 눈에 띄었다.

법원 관계자는 “대법원 판례 이후 갖가지 이유로 개명을 신청하고 있다”면서 “노력은 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에서 모든 불행의 원인을 찾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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